보고 배우는 인물사/근,현대사 영웅만들기

백정기 의사

윤의사 2019. 12. 7. 16:11

백정기의사는 1896년 1월 19일 전북 부안에서  아버지 백남일(白南一)과 어머니 파평윤씨 윤문옥(尹文玉) 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세에 독립에 대한 뜻을 품고 서울로 왔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와 

항일만세운동을 이끌었다.

19208월에 4명의 동지와 함께 인천에 있는 일본인 시설을 파괴할 계획이었다가 사전에 탄로되어

만주 봉천(지금 심양)으로 갔다.

중국에서 일본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데 힘을 쏟았으며 1924년 일왕을 처단하기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실패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자유혁명자동맹을 결성하고 흑색공포단(B.T.P)」으로 개명해 

일본의 밀정을 처벌하거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 등 일본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1932년에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천장절 및 상하이사변 기념식에 폭탄을 던질 계획이었으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들어갈 수 없었다.

이때 매헌윤봉길의사께서 물통폭탄을 투척해 시라카와 대장 등 2명을 죽이고 5명을 중상을 입히는 의거가 단행되었다.

백정기의사는 일본이 독립군의 유격전을 막기 위하여

1933년 3월 17일에 상해 공동조계 무창로에 있는 일본요정 육삼정에서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가

중국정부 요인을 매수할 목적으로 비밀회의를 한다는 정보를 듣고육삼정을 폭파하려다가 무정부주의자로

함께 활동하던 일본인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백정기와 이강훈이 붙잡혔고 원심창은 망을 보다가 피체되었다.

함께 참가한 이강훈과 원심창은 광복 후 석방되었으나 백정기 의사는 일본 나가사끼형무소에서 있던 중

폐결핵으로 1936년 6월 539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북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928에 백정기의사 기념관이 있으며,

묘소는 효창공원 내 삼의사묘에 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기념관 전경

 

 

 

 

 

 

백정기 의사 어록,  1919년 2월 향리의 동지들을 규합하며

 "일본이 조선을 강탈한 것은 청일(淸日) 로일(露日) 전쟁에서 피와 재력으로서

야망을 채우게 된 것이니, 우리도 우리의 독립과 자유를 찾으려면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 동지들은 반드시 무장을 하고 기다리자."

 

 

육삼정 사건을 보도한 신문

효창공원에 있는 삼의사 묘, 좌측은 안중근의사 가묘이며, 이봉창의사, 윤봉길의사, 백정기의사 순이다.

 

 백정기의사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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