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여성독립운동가

여성독립운동가 안중근의사의 모친 조마리아님

윤의사 2019. 4. 7. 08:33

안중근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는 1862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안태훈과 결혼 후 31녀를 모두 독립운동가로 길러냈다.

조마리아는 1907년 안중근이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자, 삼화항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여 패물을 아낌없이 내놓아 아들을 후원하였다. 이또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사가 사형을 언도받자 조마리아는 깨끗한 죽음을 택하라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수의를 보냈다.

안중근의사의 사형 후 연해주로 이주했던 조마리아는 1920년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 이강, 김붕준 등과 이웃해 살면서 상해 독립운동 진영의 안주인이자 어머니 역할을 해 여중군자로 불렸다. 1920년대 연해주 대동공보 주필 이강 선생은 조마리아를 가리켜 과연 범이 범을 낳았다고 말할 만큼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1926년 안창호가 상해 동포들을 규합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창립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27년 위암으로 65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그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면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다.

안중근 의사의 부인 김아려(1878-1946)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도우며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했지만,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재독작가 이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등 일부에서만 간략히 김아려의 행보를 묘사하는 대목만 찾을 수 있다.
김아려는 시어머니와 함께 부드러운 성품으로 젊은이들을 위로하였다.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망명객들을 위로하며 의연한 대한의 어머니로 살아갔다.
김아려는 안중근의사와 결혼해서 장녀 안현생과 맏아들 분도, 둘째 아들 준생을 두었다.

맏딸 안현생은 상하이에서 황일청과 결혼하여 평범한 삶을 살았다. 맏아들 분도는 독살당했다. 막내 준생은 일본에 의해 이용당하다가 조국에 몰래 숨어들어와 살다가, 6.25전쟁 때 해군 병원선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아려는 아버지가 없는 자식들의 교육과 독립운동가의 지원에 힘을 다했으나, 끝내 독립된 조국을 밟지는 못했다. 안타까움만 더하는 독립운동가의 가족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