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여성독립운동가

여성독립운동가 두진훼이 선생

윤의사 2020. 12. 18. 14:50

두진훼이 선생은 독립운동가 김성숙(창숙) 선생의 부인이다.

김창숙 선생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는 길에 용문사에서 17세의 나이에 출가하였다.

그 뒤 봉선사로 옮겨 한용운, 손병희와 사귀며,

1919년 3월 봉선사에서 시위운동을 펼쳤다.

 

두진훼이 선생은 중국 현대사에서 지식인이요 혁명가로,

그리고 중국 여성을 근대화시키고자 한 인물이다.

중국 광저우(廣州) 중산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중국 수상을 역임한 주은래의 소개로

1929년에 독립운동을 하던 김창숙 선생과 혼인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우호를 위해 항일독립운동에 나섰다.

1943년 2월부터 1945년 9월까지 중국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요원으로,

1945년 5월 한국구제총회 이사로 활약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나는 늘 조선 부녀들의 일을 나의 일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여야 우리 조선 부녀 동포들이 전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공헌할 수 있을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있다

고 밝혔었다.(1945711일 미주 발행 잡지 <독립>에 기고문 중)

 

보훈처는 국적을 초월한 한·중 연합 항일투쟁의 모범적 사례

2016812일에 국민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중국인으로 조선의 독립을 외친 두쥔훼이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에서 이윤옥 시인의 시)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운

겨레의 굴욕 속에

국권회복을 갈망하던 조선인

친구 되어

중국인 몸으로

함께 찾아 나선 광명의 길

임의 조국은 조선이요

임의 몸도 조선이라

빛 찾은 겨레의

동무들이여

그 이름 석 자

천추에 새겨주소서.

 

두진훼이
김성숙
제34회 임시정부 의정원 기념촬영(셋째줄 가운데가 김성숙 선생이다.)
우이동에 있는 김성숙 선생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