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여성독립운동가

여성독립운동가 광복군 여성 1호 신정숙

윤의사 2019. 4. 21. 19:59

최초의 여성 광복군이며 김구 선생의 개인 비서였던 신정숙 선생.

1910년 평북 의주에서 출생한 신정숙은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가 가명을 사용하였기에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신정숙선생은 아버지와 역시 독립운동가였던

언니 신봉조(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생사가 불명해짐)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남편 장현근과 결혼하였지만, 혼인 생활은 길지 않았다.

장현근 선생 또한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상해로 망명하여 애국청년단 활동을 하다

1932년 안창호 선생과 함게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장현근 선생은 가석방되어 다시 중국으로 망명의 길을 나섰다.

신정숙 선생도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중국유격대에 잡혀 포로가 되었다.

김구 선생의 도움으로 충칭에 온 신정숙 선생은

백범 선생의 비서가 되어 독립운동을 도왔다.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었을 때에는 

여성 1호로 입대하였다.

1942년부터 포로 심문을 통해 정보 수집과 선전공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의 장졔스 총통은 

"한국의 1명의 여성이 중국의 1천 명의 장병보다 더 우수하다."

고 할 정도로 광복군의 활동을 해방될 때까지 계속하였다.

신정숙 선생은 독립운동가 연금이 처음 실시된 1963년에 거부하였다.

"제대로 심사를 하지 않은 연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향해 자신 있는 목소리로 충고한다.

  

"여성들은 여성의 본질을 잊지 말되 사회활동을 열심히 해야 돼.

가정을 이탈하지 말고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노릇을 더 잘해야지.

시대가 바뀌니 어머니의 역할이 더 중해지는 거야. 더 배우려고 해야 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 하거든.

여성들이 남편을 지도할 위치에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지.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세밀하고 빠르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거든.

남편에게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의로운 가치관을 심어주는 게 아내의 역할이야."

 

한국광복군 여성 1호로 존경을 받는 신정숙선생이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준 선각자이기에

더욱 존경스러운 것이다.

 

 

신정숙 선생

 

 

백범선생과 함께 한 신정숙 선생

 

 

  한국광복군3분처 환송기념

(두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재가 신정숙 선생, <여성독립운동가인물사전300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