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근,현대사 영웅만들기

민영환

윤의사 2010. 7. 31. 14:43

조선 고종 때 정치인                                                                 

당대 제일의 권문세가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출세의 길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나라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고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불의에 항거하였다.

자는 문약, 호는 계정, 시호는 충정이다.


민영환은 호조판서를 지낸 민겸호의 아들로 명성황후의 조카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바른 말을 잘 했다고 한다. 그는 당대 제일의 집안 출신으로 어려움 없이 벼슬길에 나가 1877년에 동몽교관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한 뒤 본격적인 관직 생활에 들어섰다. 그러나 임오군란 때 아버지가 군인들에게 살해되자, 마음의 상처를 잊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고종의 권유로 다시 관직에 나와 이조참의가 되고, 스물일곱 살에 예조판서에 오르는 등 중요한 자리를 두루 거쳤다.


외교 사절로 활동하며 개화의 중요성을 깨닫다

민영환은 러시아의 힘을 이용해 일본을 막으려는 외교 정책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러시아 베베르 공사와 가깝게 지냈다. 그리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축하 사절로 참석하면서 유럽의 앞선 문명을 처음 접하였다.

민영환은 유럽의 근대화된 모습을 직접 체험하면서 조선이 잘 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다.


나라의 개혁과 자주 독립을 위해 노력하다

민영환은 유럽의 제도를 본떠 정치 체제를 개혁하고, 백성의 권리를 키우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군사 제도의 개편만이 받아들여졌다. 한편 1896년에 설립된 독립협회에 활동 자금을 대는 등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정치를 개혁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이 일로 민영환은 민씨 일파의 미움을 사 관직에서 쫓겨났고, 결국 독립협회는 해산당했다. 그 뒤 다시 관직에 올랐으나 일본의 내정 간섭에 반대하다가 권력에서 밀려났다.


을사조약에 반대해 죽음으로 항거하다

일본은 1905년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어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이 소식을 들은 민영환은 궁궐로 달려가 조약에 찬성한 5명의 역적을 처벌하고 조약을 없던 것으로 하자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민영환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불의에 항거하였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 다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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