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근,현대사 영웅만들기

흥선대원군

윤의사 2010. 8. 2. 08:52

조선 고종 때 정치가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는 호포제와 사창제를 실시하고 서원을 없애는 등 사회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서구 열강의 문호 개방 요구를 거부하고 프랑스 군대와 미국 군대의 침략을 막아 냈다. 호는 석파, 시호는 헌의이다.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스물네 살에 흥선군에 봉해졌다. 하지만 왕족들은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안동 김씨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이하응은 안동 김씨의 감시에서 벗어나려고 일부러 불량배나 거지들과 어울리며 온갖 천한 일을 다하였다.

그러면서 대왕대비를 설득해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을 아들이 없는 철종의 후계자로 삼도록 하였다. 마침내 철종이 죽고 그의 아들이 열두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고종이 되었다. 이후 이하응은 흥선대원군이 되어 권력을 거머쥐었다.


사회를 개혁하고 왕권을 강화하다

흥선대원군은 먼저 순조 이래로 세도를 부려 온 안동 김씨를 비롯한 부패한 관리들을 내쫓고, 당파에 관계없이 골고루 인재를 뽑았다. 리때 국가 재정을 낭비하고 당쟁의 원인이 되어 온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모두 없앴다. 도한 양반들에게도 호포라는 세금을 거두어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였다. 나아가 <육전조례>와 <대전회통>을 펴내 법률 제도를 확립하고 더욱 중앙 집권적인 정치가 되게 하였다.

한편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말썽이 많은 환곡을 없애고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강제로 기부금을 걷고 부역을 동원해 백성들에게 많은 원망을 들었다.


쇄국 정책으로 근대화의 기회를 놓치다

흥선대원군은 청나라가 영국과 아편 전쟁을 치루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자, 서양의 침입을 철저히 막기 위해 쇄국 정책을 실시하였다. 나아가 쇄국 정책을 알리는 내용의 비석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중요한 지점에 세웠다. 또한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하여 8천여 명에 이르는 천주교도를 죽이며 박해하였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이 펼친 지나친 쇄국 정책으로 국제 관계가 악화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또한 조선이 근대화의 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여 훗날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다

흥선대원군은 10여 년 동안 집권한 뒤 최익현의 상소로 물러났다. 결국 흥선대원군은 물러나야 했지만 그 뒤로도 나라가 혼란에 휘말릴 때마다 정권을 다시 잡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계사의 흐름에 어두워 조선을 근대 국가로 성장시키지 못한 채 강대국들의 이권 다툼에 휩슬리게 하였고, 흥선대원군 자신도 정권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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