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우리나라의 볼거리

자운서원과 화석정

윤의사 2009. 9. 28. 10:00

                                                              자운서원전경 

 

                                                                  이이묘 

 

 

                                                                묘정비 

 

                                                            화석정전경

 

신사임당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사람들은 강원도 강릉시의 오죽헌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가까운 파주시에 신사임당을 모신 가족의 산소가 있다. 시원하게 뻗은 통일로를 따라 1시간 여를 달리면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이른다. 이곳에 경기도 기념물 제 45호로 지정된 자운서원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있다. 이 서원은 1615년(광해군 7년)에 만들어져 율곡 선생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서 율곡 선생을 따르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그 후 1650년(효종 원년)에 임금으로부터 ?자운서원?이라는 현판과 토지, 노비, 임야를 하사받은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그러나 1868년(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가 1970년에 다시 지어졌다. 높은 대지위에 사당을 앉히고 돌로 담장을 두른 모양이다. 입구를 지나면 처음으로 신도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신도비는 많은 업적을 남긴 위인들의 묘소와 신위가 보관되어 있으니 경건하라는 표시일 것이다. 신도비를 지나 올라가면 왼쪽으로는 자운서원과 오른쪽으로는 이이 선생의 가족 묘소가 있다. 자운서원은 외삼문을 지나 중앙에 학문을 강의하던 강당이 있고, 양쪽에는 기숙사인 재가 있다. 강당을 지나 내삼문을 거치면 이이 선생의 사당인 자운사(紫雲祠)가 있다. 자운사 양편에는 은행나무가 율곡선생을 추모하듯이 서있다. 그러나 사당인 ‘자운사’의 현판이 ‘자운서원’으로 되어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사당의 앞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묘정비(廟廷碑)가 서있다. 이 비는 율곡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자운서원의 건립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비의 상단에는 ‘자운서원 묘정비’라고 김수항이 쓴 머리글(전액)이 있으며, 비의 내용은 송시열이 짓고 당대의 명필인 김수증이 썼다. 자운서원에서 나와 언덕을 따라 오르면 이이 선생의 가족 산소가 있다. 이곳의 산소의 배치는 다른 곳과 다르다. 대개 높은 곳에서부터 제일 높은 조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내려오는 것이 순서이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 쌓은 83계단을 오르니 첫 봉분이 이이 선생의 맏아들 경림, 그 위가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를 합장한 산소, 또 그 위가 이이 선생의 맏형 선의 무덤, 다시 그 위가 율곡 선생의 산소이다. 그런데 율곡 선생의 산소에는 이이만 묻혀있고, 노씨 부인의 산소는 그 뒤에 있다. 부부를 나란히 모시거나 합장하는 것이 상식이나 이곳은 그렇지 않다. 이이 선생의 부인 노씨는 임진왜란 때까지 살았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이곳으로 시녀와 함께 피난을 갔다. 그러나 왜군은 이곳까지 와서 60세가 된 노씨 부인에게까지 폭행을 하려고 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칼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1년만에 왜군을 물리치고 노씨 부인의 시체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확실하지 않아 율곡 이이 선생의 산소 뒤에 묻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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