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에 장날을 맞아 약 1,000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독립 연설회를 한 다음 만세시위를 하였다. 시위대는 일본인 소학교도 불질렀다. 다음 날인 4월 1일 주변 산봉우리 80여 곳에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르자 일본인 부녀자와 언론인이 피난할 정도였다. 만세시위가 계속 이어지자 일본군은 검거반을 조직해 탄압에 나섰다.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오늘날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는 만세운동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본군 중위 아리다 도시오가 이끄는 11명의 군인과 2명의 경찰은 4월 15일 오후에 제암리 마을에 들어와 강연을 한다고 속여 기독교와 천도교 신자를 교회에 집합시켰다. 교인 32명이 교회당에 모이자 중위는 군사들에게 예배당을 포위하고 창문과 출입문을 닫고는 일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