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박물관은 살아있다

서울역 커피사회 전

윤의사 2019. 2. 16. 09:09

서울역에서 '커피사회'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커피를 팔던 다방의 변화모습도 함께 보여주었다.

그 중에 추억을 자극하는 사진도 보였다.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 거의 사라져간 공중전화,

커피믹스가 나오기 전 커피와 프림.

40여년 전의 추억을 생각하게 하였다.


커피를 양탕국이라고도 하였다.

커피가 양탕국으로 불린 사연은 플레장(Plaisant)과 나무꾼의 이야기에서 유래가 되었다.

프랑스 상인인 플레장은 조선으로 오면서 어떤 사업을 할까 고민하였다.

플레장은 양반 귀족층들이 나무 땔감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땔감에 사용할 나무를 구하였다.

그러나 이 사업의 1인자는 조선 사람인 최순영이었다. 그는 장작왕이라 불리웠다.

최순영은 나무를 해오는 사람들을 사대문 밖에서 기다리다 모두 사들였다.

서대문에서 장사를 하는 플레장에겐 차레가 오지 않았다.

이에 플레장은 자기 이름을 고양 부()의 시조라 하고, ‘부래상(富來祥)’ 으로 한 다음,

 ‘고양 부씨의 화목장(火木場)으로 오시오. 그러면 값도 후하고 커피를 공짜로 주겠소.’라는 광고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자하문 고개와 무악재를 넘어오는 나무꾼들에게 다가가 커피를 따라주며 나무를 사고자 하였다. 나무꾼들은 플레장이 따라주는 커피에 맛을 들였고, ‘자신들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서양 국물이라고 하여 양탕국(洋湯)’이라 불렀다. 아마도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이 나뭇짐을 짊어지고 오느라 지치고 힘든 나무꾼들에게 각성 효과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플레장은 커피 효과를 톡톡히 보자, 최순영은 막걸리를 대접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플레장은 경성에 개설된 13개 시장 가운데 하나인 부래상 시장의 존재로 많은 부를 축적했음을 알 수 있다.













70-80년대 다방에 꼭 있었던 재털이와 라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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