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은 서울 도심을 흐르는 도시하천으로
서울의 경관 변화에 다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왔다.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면서
개천이 도심하천으로
식수이면서 더위에는 한양 백성들에게 시원함을 주는
멱을 감던 곳이다.
또한 개천을 중심으로 한양의 생활 공간이 북촌, 남촌, 웃대, 중촌, 아랫대로 구분지어졌다.
광통교 이북 지역의 개천 상류 지역을 윗대 혹은 상촌,
광통교에서 효경교에 이르는 양안 지역을 중촌,
효경교에서 오간수문에 이르는 개천 하류지역을 아랫대 혹은 하촌이라 했다.
백악산 남족 기슭은 북촌,
목멱산 북쪽 기슭은 남촌,
낙산 서쪽 지역을 동촌,
서대문과 서소문 사이를 서촌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경'을 친 사람들의 집단인 거지가
미꾸라지와 민물고기를 잡아 팔아 삶을 이어갔다.
일제 강점기에 청계천은 변화의 물결을 맞이했다.
8.15 광복과 6.25 전쟁을 치르면서
청계천은 판자촌을 짓고 사는 빈민들의 터전이 되었다.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청계천 복개로
미싱과 각종 전자부품, 기계공구의 공급원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노동법이 개정되는 주요한 역할이 되기도 하였다.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지금은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한양의 산과 하천이 CG로
신덕왕후의 릉 묘지석으로 광통교 난간을 만든 태종
광통교의 모습
복개 초기의 모습
청계천 판자촌의 모형
청계천 염색공장의 모습
청계천 여직원의 모습들
청계천 복개 후 평화시장
세운상가의 모형
청계천 복원 후 통수하기 위한 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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