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

광주일보에 소개된 반역의 한국사

윤의사 2016. 4. 8. 20:33

“대장이나 정승이 본래 종자가 있겠는가! 시기만 만나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어찌 채찍 아래에서 뼈 빠지게 천역만 하겠느냐!”

고려 무신정권 실력자 최충헌의 사(私)노비인 만적은 1198년 5월 봉기를 꾀한다. 개경 내에 있는 모든 노비와 환관 등을 규합하는 ‘노비 해방’을 꿈꿨지만 사전에 누설돼 수장되고 만다. 고려 사회의 신분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만적의 반란’은 비록 실패했지만 이후 천민들의 봉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김현묵(극작가)·민병덕(경기도 용동중 교감) 공저 ‘반역의 한국사’는 통일신라 말기부터 구한말까지 발생했던 민란과 군란 등 ‘반역’을 편년체(編年體)로 정리한 책이다. 궁예, 묘청, 정중부, 배중손, 이성계, 수양대군(세조), 임꺽정, 광해군, 이괄, 홍경래, 김옥균, 전봉준의 공통 분모는 무엇인가? 흔히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이라 말한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조카(단종)를 내몰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을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의 거사는 헛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돼 청사(靑史)에 이름을 올렸다.

이 책은 신라·고려시대, 조선시대 전기, 후기로 시대를 나눠 충실한 논거(論據)를 바탕으로 역사 속의 19개 ‘반역’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들은 역사교과서에서 한 줄로 간단히 지나치는 ‘반역’이 왜 일어났는지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진행과정과 결말, 역사적 의의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승려 묘청과 정지상, 백수한 등이 1135년 정월, 반기를 든다.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 옛 고구려 강역 수복운동을 바탕으로 한 이들은 기운이 쇠퇴한 개경 대신 평양(서경)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반란군은 김부식이 이끄는 중앙정부 군대의 포위에 맞서 1년 이상 완강하게 항전을 계속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는 “이 사건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해 고구려적인 기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며 애석해 했다.

묘청, 홍경래 난 등 역사적인 반란은 리더 혼자만의 힘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묘청 난에는 농민들이, 홍경래 난에는 부를 축적한 대상인을 비롯한 농민, 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임오군란에는 훈련도감 군인 외에 서울 빈민들이 동참했다. 또 19세기는 민란의 시대였다. 1862년 2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경상도·충청도·전라도·황해도 등지에서 72차례 농민항쟁(임술민란)이 일어났고, 갑오년(1894년) 동학 농민혁명으로 이어진다.

저자들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역사 속의 시민들이 추구한 ‘혁명’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며 “시민들의 뜻이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에) 반영 되지 않을 때에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보이기보다는, 선거나 투표를 통해서 시민들의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의 시대상 역시 ‘흙수저·금수저’ 논란에서 보듯 과거와 닮은 꼴을 하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이 책은 모순적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현대판 혁명’인 투표의 힘을 새삼 일깨워준다.

〈책이 있는 마을·2만5000원〉

/송기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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