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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상주 임란북천전적지(壬亂北川戰跡地)

윤의사 2015. 1. 6. 12:44

 

임란북천전적지(경상북도 기념물 제77호)

경상북도 상주시 만산동 699

 

 

임란북천전적지 안내도(개방시간 09:00~18:00)

 

상주를 지날때마다 야간에 조명이 켜져 있고 한옥이 많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뭐하는 곳인가 하고  많이 궁금했는데 드디어 가게 되었다.

 

 

이곳 북천변 자산 기슭은 임진왜란(1592) 때 왜군에 대항하여 우리 관군과 의병들이 격전한 전적지이다.

이 전투에서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이 인솔한 관군과 상주지방에서 창의한 의병들이

 왜군의 기습을 받아서 종사관(從事官) 윤섬(尹暹), 이경류(李경流), 박호(朴箎) 등과 

상주판관(尙州判官) 권길(權吉), 사근도(沙斤道) 찰방(察訪) 김종무(金宗武),

호장(戶長) 박걸(朴傑), 의병장(義兵將) 김준신(金俊臣), 김일(金鎰) 등

 수많은 군사들이  순절(殉節)하고 패전(敗戰)하였으나 임란사상 중앙(中央) 관군(官軍)과

 의병들이 뜻을 모아 왜군에 대항한 첫 전투라는데 큰 뜻을 지니고 있다.

1990년부터 사당, 전시관, 사적비 등을 세우고 원래 있었던 박걸(朴傑) 단소(壇所) 및

권길(權吉) 사의비(死義碑)를 이건하여 사적공원(史蹟公園)으로 조성하였다.

 

 

임란북천전적지 정문을 들어서면 저멀리 태평루가 바라다 보이고

 

 

왼쪽으로 상주 객사인 상산관이 자리하고 있어 먼저 그곳으로 가 보았다.

 

 

상주 상산관(尙州 商山館, 유형문화재 제157호)

이 건물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33년(1307) 당시 목사 김영후가 중수했다는

 『상산지』 기록으로 보아 이보다 앞서 건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객사이다.

 

 

조선 중종(中宗) 21년(1526) 소실된 것을 목사 윤탕이 중건하였으나

선조(宣祖 ) 25년(1592)에 한차례 불탐으로써 동왕 39년(11606)에

재건되었고, 현종(顯宗) 7년(1666)에 다시 중건하였다.

동성동(東城洞) 현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나 1940년 상주 여자중학교 자리로

 옮겨와서 교실로 사용하다가 건물이 침하되어 1991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가운데 전폐를 모시는 주관(主館)이 자리잡고 그 좌우에 관원들이 머무는

양익사(兩翼舍)가 주관으로부터 각기 반칸 정도 멀어져 놓여있다.

주관의 지붕은 양익사보다 한단 높게 하고 그 내부 어칸(御間) 뒤벽 앞쪽에

궁궐 방향으로 전패를 모셨다. 이런 형식은 객사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객사 옆으로 가면 쪽문이 있는데 들어가면 침천정이 있다.

 

 

침천정(枕泉亭)

이 정자는 조선시대 1577년(선조 10)에 상주목사 정곤수(鄭昆壽)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蓮堂)이라 이름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정(官亭)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관해군 4)에 상주목사 한술(韓述)이 중건하고

1614년(광해군 6) 상주목사 강복성(姜復誠)이 천향정으로 개칭하였으며 1693년(숙종 19)에

 목사 이항이 연지(蓮池)를 홍백연당(紅白蓮塘)으로 고치고 이향정(二香亭)이라고 하였다.

그 후 일제시대인 1914년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상주읍성이 헐릴 때 지방의 뜻있는

유지 여러명이 정자를 사서 현 위치로 옮기고 군수 심환진(沈晥鎭)이

침천정이란 이름으로 고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침천정 앞에는 소나무 자태가 멋있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상주시 모서면과 내서면 경계에 있는 백학산에서

발원하여 내서면과 상주읍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북천이 흐른다

 

 

북천 위에는 북천교가 멋지게 자리하고 상주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침천정에서 위로 올라가면 임란북천전적비가 세워져 있고

 

 

사당은 임란북천전적지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당 외삼문 왼편에는 윤섬,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등 순국비 5기가 세워져 있다.

 

 

외삼문 경절문

 

 

경절문을 들어서면 충의문 왼편에 비각이 세워져 있다.

 

 

비각(碑閣)

이 비각에는 임진왜란 때 이곳 북천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3충신(종사관 윤섬, 박호, 이경류)과 2의사(의병장 김준신, 김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신의사단비」 복제본과 상주목판관으로 봉직(奉職) 중 순국한

권길의 충절(忠節)을 새겨 둔 「판관권길의사비」가 보호되고 있다.

「충신의사단비」는 1793년(정조 17)에 사액받아 충의단에 비를 세웠는데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충의단(忠義壇)에 있는 비와 똑같이 복제한 것이며,

「판관권길의사비」는 창석(蒼石) 이준(李埈) 선생이 찬하여 1698년(숙종 24)에

 건립된 자산 아래로 1991년에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충의문 들어가기 전 오른쪽에  임란기념관이 자리하고 있고

 

 

왼쪽에 자양재라는 재실이 있다.

 

 

내삼문 충의문

 

 

사당 충렬사

 

 

마음을 가다듬어 나라를 위하여 순국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충렬사에는 그 당시  순국한 종사관 윤섬, 이경류, 박호, 상주판관 권길, 사근도찰방  김종무,

 의병장 김준신, 김일 상주호장 박걸 등  순절한 무명열사 분들의 위패를 배향하고

 매년 양력 6월 4일 제향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충렬사 좌우에는 순절한 분들의  무덤이 있다.

 

 

 

 

사당에서 내려오는 길에 충렬사 유허비와 상주판관 권길, 충신 김종무,

상주호장 박걸의 순국비가 세워져 있다.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단청이 화려한 태평루가 자리하고 있어 그곳으로 가보았다.

 

 

태평루

이 누각은 조선시대 1808년(순조 8)에 상주목사 정동교(鄭東敎)가 건립했다.

건축 양식은 조선시대 성행한 다포식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당시는 왕산을 중심으로 쌓은 상주읍성 관아문(官衙門)의 내삼문 밖에

있었고 동헌(東軒)의 문루(門樓)로 사용하였다.

그 후 1920년 상주향교 동편에 있는 동산으로 옮겼고, 1960년 향교서재(西齋)

 부근으로 옮겨 남산중학교 교사(校舍)로 사용하다가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1992년 현재 위치에 옮겨왔다.

 

 

 

 

상주터미널에서 보면 한옥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임란북천전적지 이곳이다.

 

 

내려오면서 보니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상주객사에 주민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다.

 

 

임란북천전적지 주차장에서 담을 따라 천봉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천봉산 등산로 안내판

천봉산(435.8m)은 산세가 부드럽고 등산로 주변에 소나무가 우거져 아침운동이나 산림욕을

 즐기기에 적당한 곳으로 등산로 주변에는 쉼터와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면 주변의 웬만한 산봉우리는 다 조망된다.

황악산, 속리산, 주흘산,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등등 산이 낮으면서도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연 전망대라 할 수 있다.

 

일반코스-임란북천전적지-자산-조망바위-간이약수터-정상(1시간)

세천코스- 정상-잘록지점-황골산-세천(1시간 50분)

 

 

 

 

 

 

 

 

 

 

출처 : A Bird Of Paradise
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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