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움직이는 역사박물관 33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가는 방법 : 1 종각역 종각역 3-1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횡단보도가 하나 나와요. 횡단보도를 건너면 오른편에 바로 센트로폴리스 건물이 있어요. 그 건물 지하 1층에 공평 도시 유적 전시관이 있어요. 공평 도시 유적 전시관은 조선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실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에요. 현재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의 높이는 비가 오면 흙이 밀려오는 등의 이유로 높아졌다고 해요. 그래서 간혹 공사를 위해 땅을 파다가 문화재를 발굴하기도 하지요. 지금 전시관이 세워진 자리에서도 2015년 도시 환경 정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총 108개 동 건물지, 골목길 등의 유구와 1000여 점이 넘는 생활 유물이 발굴되었어요. 이를 보존하기 위해 공평 도시 유적 전시관..

종묘

가는 방법 : 종로3가역 종로3가역 11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종묘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종묘는 조선 시대 임금들의 신주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던 왕실의 사당을 말해요.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다음, 경복궁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사직을, 왼쪽에는 종묘를 세웠지요. 임진왜란 때 종묘의 부속 건물인 정전과 영녕전이 불에 타 1608년에 보수되었어요.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을 지나면 신로가 보여요. 신로는 종묘 제례와 같은 의식을 위해 만든 길이에요. 신로는 세 길로 나뉘어요. 가운데 길은 조상들의 혼령이 다니는 신로와 향, 축문, 폐백 등 제사 예물이 오가는 향로를 합쳐 신향로라고 부르고 그 오른쪽 길은 임금이 다니는 어로, 왼쪽 길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라고 부른답니다...

진리와 삶의 터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가는 방법 : ‘합정역’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와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왼편으로 양화정 정자와 CU 편의점이 보일 거예요. 그 사잇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 보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입구가 나와요. 양화진은 조선 시대 한강 5대 나루 중 하나예요. 이곳에 큰 선박들이 들어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생산물들을 도성과 궁궐로 보낼 수 있었지요. 이러한 입지 조건 때문에 외적들도 양화진을 통해 쉽게 조선을 침략하곤 했어요. 그래서 조선 21대 왕 영조는 외적을 막기 위해 양화진에 군사들을 배치했어요. 그러다 1866년, 양화진에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왔다가 물러나고 이후 강화도를 점령한 사건인 병인양요가 일어났어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지요. 이 사건으로..

약현성당

가는 방법 : 충정로역 충정로역 5번 출구로 나온 다음 오른편으로 중림 파출소가 나올 때까지 직진해요. 왼편 횡단보도를 건너면 오른편에 골목길이 있어요. 이를 따라 걷다 보면 약현 성당 후문이 보일 거예요. 사적으로 지정된 약현 성당은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에요. 1900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 중 일본식으로 지은 고딕 양식 건물이 아니라 전통 고딕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어요. 명동 대성당을 설계한 프랑스 신부인 코스트의 설계로 1891년 건축을 시작하여 1년 만에 완공되었지요. 약현 성당은 경기도부터 황해도까지 여러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천주교 신자들을 돌보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제 서품식(주교와 신부를 임명하는 의식)이 열린 곳이기도 해요...

명동대성당

가는 방법 :명동역 명동역 10번 출구로 나와 직진 후 사거리에서 왼편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명동 길 표지판이 나와요. 표지판을 따라 왼편으로 걷다 보면 왼쪽에 명동 대성당이 나와요. 명동 대성당은 우리나라의 천주교 역사를 보여 주는 천주교의 상징이랍니다. 천주교는 우리나라에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먼저 들어왔어요. 그래서 천주교를 ‘서양 학문’, 즉 ‘서학’이라고 불렀지요. 조선 중기에 명나라에 갔던 사신들이 서양 문물을 들여오면서 중국 서학이 조선에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유학자들은 서학을 학문으로 받아들였지요. 학자 이수광은 일종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에 천주교 교리서인 《천주실의》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지요. 서학이 단순한 학문에서 종교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천진암과 주어사라는 사찰에서 진행된 강..

진리와 삶의 터전 봉은사

가는 방법 : 봉은사역 봉은사역 1번 출구로 나와서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봉은사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봉은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교 종단인 조계종이 직접 관리하는 사찰이에요. 주변이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의 절이지요. 794년 신라 시대 때 연회 국사라는 승려가 견성사라는 절을 세웠어요. 조선 전기까지 견성사라 불렸지요. 성종의 왕비 정현 왕후가 성종의 능인 선릉의 동쪽에 있던 견성사를 중창(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하면서 봉은사라고 이름을 바꾸었어요. 봉은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비롯하여 수차례 소실되었다가 복원되는 것을 반복했어요. 1941년부터 도평 주지 스님이 다시 지으면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봉은사는 임진왜란 때 스님들을 이끌고 왜군을 막았던 ..

삼전도비

가는 방법 : 잠실역 잠실역 3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횡단보도가 나와요. 보도를 건너면 잠실 광역 환승 센터가 보일 거예요. 이 곳을 지나면 오른편으로 석촌 호수 입구가 나와요. 입구로 들어가면 삼전도비를 볼 수 있어요. 삼전도비는 전체 높이가 5.7미터의 비석이에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글을 새긴 몸돌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는 용 모양을 새긴 머릿돌이 장식되어 있어요. 삼전도비의 본래 이름은 ‘대청 황제 공덕비’였어요. 청나라 황제의 공덕을 기념하는 비석이라는 의미이지요. 우리나라에 왜 이러한 비석이 세워진 걸까요? 삼전도비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알려면 우선 조선과 명나라, 그리고 청나라와의 관계를 알아야 해요. 조선의 16대 왕 인조는 외교 정책으로 친명배금 정책을 펼쳤어요. 친명배금이..

구 러시아 공사관

▷가는 방법 : 5호선 서대문역 서대문역 5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요. 그러면 오른편에 한국 씨티 은행과 맞은편에 IBK 기업 은행이 보이는데, 그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요. 조금 더 걷다 보면 정동 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계단이 있어요. 여기서 올라가면 구러시아 공사관이 정동 공원 안쪽에 위치해 있답니다. 구러시아 공사관은 1885년에 짓기 시작하여 1890년에 완공되었어요. 6ㆍ25 전쟁으로 불타 훼손된 부분을 1973년에 오늘날처럼 복구했어요. 구러시아 공사관은 대한 제국의 슬픔과 개화의 역사를 한 아름 안고 있는 곳이에요. 고종이 일본을 피해 피신했던 아관파천의 역사적 현장이거든요. 그 당시 러시아를 아라사라고 불렀어요. ‘아관’이란 아라사 공사관의 준말이고, ‘파천’은 ‘임금..

배재 학당 역사 박물관

가는 방법 : ‘시청역’ 시청역 10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오른편에 파리바게트 빵집이 보일 거예요. 여기서 오른쪽에 끼고 돌아 계속 직진하면 왼쪽에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이 배재 학당 역사 박물관이에요. 배재 학당 역사 박물관은 2008년 배재 학당 동관 건물을 재단장한 곳이에요. 배재 학당의 교육 이념과 역사, 우리나라를 이끈 지도자들의 모습,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의 활동 등을 기록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배재 학당은 1885년 미국 선교사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가 설립한 근대식 중등 교육 기관이에요. 1886년 고종이 ‘널리 인재를 길러라.’라는 뜻으로 ‘배재’라는 학교명을 내려 주었다고 해요. 그 이름 덕분인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국어학자인 주시경 등 한국을 빛낸 인재들을 배출..

서울시립미술관

시청역 10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 보면 오른편에 파리바게트 빵집이 보일 거예요. 파리바게트를 오른쪽에 끼고 돌아 계속 직진하면 오른편으로 서울 시립 미술관 표석과 서울 중앙 지방 법원 중부 등기소 표석이 나와요. 그 사이 서울 시립 미술관 주차장 길로 들어가면 서울 시립 미술관(서소문 본관)이 나와요. 서울 근현대사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정동 한가운데에 서울 시립 미술관(서소문 본관)이 있어요. 서울 시립 미술관(서소문 본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법 기관인 한성 재판소가 있던 자리에 1928년 경성 재판소로 지어진 건물이에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하면서 많은 독립투사들이 억울하게 처벌을 받은 가슴 아픈 장소지요. 일제 강점기에 사법 기관 역할을 한 경성 재판소는 해방 이후에도 대법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