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근,현대사 영웅만들기 66

한국인 최초 비행사 안창남

일제 강점기의 비행기 조종사이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최초로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땄다. 안창남은 1922년 일본에서 비행사 자격을 딴 뒤, 비행기 양편에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금강호를 타고 여의도 비행장서 시범 비행을 했다. 안창남이 5만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멋지게 하늘을 날자 많은 청소년들이 비행사가 되기를 바랐고, 국민들의 생각도 한층 근대화되었다. 1923년에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들 손에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자, 안창남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고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항공 학교 교관으로 일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그는 일본을 이기기 위해 하루빨리 우리도 비행기 공장을 세우고, 비행술을 익히자고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그러나 1930년 4월 비..

녹두장군

넓은 들판 에 2채의 초가집이 보인다.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의 녹두장군 생가는 세 칸 짜리 낡은 초가집으로 방, 부엌, 건넌방과 마당 한쪽에 있는 창고가 있는 허름한 집이다.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오는 듯 하였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녹두장군집을 둘러보며 장군의 불의와 싸우는 꿋꿋한 정신을 되새기며, 생가 이외에 깊은 감동을 줄만한 자료가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녹두장군집을 떠나 황토현으로 갔다. 황토현은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싸워 승리를 거둬 사기를 크게 높인 싸움터이다. 농기구와 대나무창으로 무장한 농민군에 비하여 정규군 800명과 보부상 부대 1300명으로 구성된 관군은 총과 대포 등 신식 무기를 갖춘 부대였다. 그러므로 동학군과 관군의 ..

시인 김수영

대한민국의 시인인 그는 현실 비판과 저항 의식을 바탕으로 자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김수영은 광복 이후 조국으로 돌아와 박인환을 만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인환, 김경린 등과 함께 시집을 펴내 근대적인 경향을 드러냈다. 초기에는 현대 문명과 도시 생활을 비판하는 작품을 주로 썼는데, 한자어를 비롯한 어려운 어휘를 즐겨 써서 이해하기 어려운 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 전쟁을 겪고 난 뒤 어려운 말들이 많이 사라졌고, 소재도 일상 생활에서 끌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4.19 혁명이 일어나자, 현실 비판과 저항 의식을 바탕으로 자유에 대한 강한 의지를 시로 표현했다. 김수영이 남긴 시집은 , , 가 있고, 산문집으로는 , 가 있다. 시비에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저항하면서 ..

조지훈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국문학자이다.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민족성을 살리고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는데 힘썼다. 올해는 조지훈 탄생 100주년이다. 조지훈은 꽃탑소년회 활동을 통해 문학적인 재능을 키우기 시작했고, 1939년 4월 에 '고풍의상'을 발표하면서 시인이 되었다. 그는 전통적인 소재들을 세련된 시 속에 담아 어두운 일제 식민지 시대에 민족정신을 드높였다. 해방 이후 김동리, 조연현 등과 함께 청년문학가협회를 만들어, 민족성을 살리고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는데 힘썼다. 조지훈은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는데, 한국 현대시는 김소월, 김영랑에서 비롯되어 서정주, 유치환을 거쳐 청록파로 이어진다. 이처럼 조지훈은 현대시사에 중요한 한획을 그었으며, '승무', '풀잎단장', '역..

녹천 고광순

녹천 고광순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함께 전사한 고경명과 고인후의 12대손 및 11대손이다. 전라남도 담양에서 1848년 2월에 출생하였다. 1895년 왜놈의 칼에 의하여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기우만과 함께 을미의병을 일으켜 일본에 항거하였다. 녹천은 일본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 유격전으로 일본과 맞섰다. 1907년 지리산 연곡사에서 일본군의 기습으로 의병 13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때 고광순의 나이는 임진왜란 때 전사한 12대조 고경명과 같은 나이인 60세였다. 고광순은 의병을 일으킨 기치로 '家國之讐(가국지수)를 갚자'였다. '집안과 국가의 원수를 갚자'는 내용이다. 임진왜란 때 조상의 원수이기도 하며 국모를 시해한 나라의 원수를 갚자는 뜻일 것이다. 고광순이 마지막으로 함께 의병전쟁을 일..

백정기 의사

백정기의사는 1896년 1월 19일 전북 부안에서 아버지 백남일(白南一)과 어머니 파평윤씨 윤문옥(尹文玉) 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세에 독립에 대한 뜻을 품고 서울로 왔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와 항일만세운동을 이끌었다. 1920년 8월에 4명의 동지와 함께 인천에 있는 일본인 시설을 파괴할 계획이었다가 사전에 탄로되어 만주 봉천(지금 심양)으로 갔다. 중국에서 일본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데 힘을 쏟았으며 1924년 일왕을 처단하기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실패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자유혁명자동맹을 결성하고 「흑색공포단(B.T.P)」으로 개명해 일본의 밀정을 처벌하거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 등 일본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1932년에는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