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우리나라의 볼거리

경주 감은사지

윤의사 2017. 3. 1. 16:22

신라 제 30대왕인 문무왕은 왕위에 있던 21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백제 부흥군, 고구려,

당나라와 전쟁을 치러, 마침내 최초로 삼국 통일을 이루고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닦았다.

 

문무왕의 이름은 김법민이다. 아버지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태자가 되었다.

그리고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김유신과 함께 군사 5만 명을 이끌고 나가 백제를 멸망시켰다.

다음 해 고구려를 공격하는 도중 태종 무열왕이 죽자, 신라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문무왕은 백제 부흥군의 저항을 진압하는데 힘을 쏟는 한편, 고구려 정벌 계획을 계속 진행시켰다. 그래서 김유신, 김인문 등을 앞세워 고구려를 연거푸 공격한 끝에 마침내 멸망시켰다.

 

한반도에서 당나라군을 몰아내다

백제와 고구려가 망한 뒤 당나라는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를 만들어 군대를 주둔시키고 다스리고자 하였다. 나아가 계림도독부도 만들어 신라까지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문무왕은 백제의 옛 땅에서 당나라와 결탁하고 있는 세력을 누르거나,

고구려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부흥군과 함께 힘을 합쳐 당나라군에 대항하였다.

672년 마침내 당나라군은 대군을 동원해 신라를 공격했다.

문무왕은 굴하지 않고 당나라 대군에 맞서 한강에서부터 대동강에 걸쳐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신라군은 674년 설인귀가 이끄는 당나라 대군을 무찌르고, 뒤이어 당나라의 20만 대군을

매소성에서 크게 물리쳤다. 신라군은 이 전투에서 3만 마리의 말과 많은 무기를 빼앗았다.

게다가 676년에는 당나라의 수군을 금강 하류 기벌포에서 크게 물리쳤다.

이 승리 이후 당나라는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성으로 옮겼고,

이로써 문무왕은 한반도 최초의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통일 국가의 기틀을 닦다

문무왕은 당나라와 맞서 싸우는 한편, 통일 국가의 체제를 갖추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중앙과 지방 행정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고, 군사 제도도 바꾸었다.

그리고 당나라의 앞선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신라의 문화 수준을 크게 높였다.

또한 해안가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왜구를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했다.

문무왕은 세상을 떠나면서,

죽어서도 큰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으니 동해에 장사지내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하여 문무왕의 시신은 화장하여 동해 앞바다에 모셨는데,

지금의 경주시 감포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이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조상 앞에 오늘날 정치 지도자는 부끄럽지 않은지...

오직 국민 분열 조장에 앞장서는 것 같아 문무대왕과 같은

진정한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언제 나타날 지 기다려진다.

 

문무대왕릉으로 추정하는 대왕암

 

 

문무대왕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지어진 원찰 감은사지

 

 

감은사지 서탑, 국보 제112호. 높이 13.4m. 동서로 건립된 두 탑의 규모와 형식은 동일하다.

서쪽에 있는 석탑을 해체·수리하면서 3층 탑신에서 발견된 청동으로 만든 사리기와 금동사리기함은

오늘날 반도체 기술에 버금갈 정도의 세공술을 보여준다.

 

감은사지 동탑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에 구들을 설치하였다.

 

만파식적

문무왕과 김유신이 죽은 뒤 뜻을 모아 동해에 있는 한 섬에 용을 시켜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은 이 기이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보러 갔다.

그러자 용이 나타나 말하기를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손을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 법인지라, 이 대나무도 역시 합쳐져야만 소리가 나는 것이오.

또한 대왕은 이 소리가 나는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오.”라고 하였다.

신문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그러자 세차게 불던 바람이 잦아들고, 거친 파도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질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내리며 장마에는 비가 그쳤다.

그리하여 신문왕은 피리의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고, 국가의 보물로 다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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