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거상 김만덕

제주의 상인을 지배하다1

윤의사 2010. 6. 27. 10:37

시간이 지나도 만덕의 객주집에는 사람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만석은 애가 탔다.

‘아우는 무엇을 믿고 저리 태평하단 말인가?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이렇게 속이 타들어가는데...’

만석처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만덕도 상인의 발길이 떨어지자 걱정이 되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을 하던 만덕이는 기생 시절을 돌이켜보았다.

‘맞아. 바로 그것이야.’

만덕은 곧 만석을 불렀다.

“오라버니, 지금 육지로 나가는 상인에게 부탁하여 가체와 화장품을 사오도록 하세요.”

“가체라니...”

가체는 부녀자가 화장을 할 때 자기 머리에 다리(여자의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려고 덧넣었던 딴 머리)를 넣어서 덧붙이는 것을 말한다.

얹은 머리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여인들의 머리형으로 이어져 오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원나라의 머리 장식을 본받은 가체로 말미암아 높고 커지기 시작했다.

가체에 필요한 다리는 검은 숱이 많고 윤기가 나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질좋은 다리를 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 하나를 만들려면 여러 사람의 머리가 들어가야 했고, 사람마다 머리카락 빛깔이 다르므로 비슷한 색깔을 모으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좋은 다리는 가격이 매우 비싸 큰 돈을 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여자들은 서로 다투어 머리를 크고 높고 화려하게 꾸미려 하였다. 성종실록에 보면 ‘부녀자들이 높은 다리를 좋아하여 사방의 높이가 한 자가 되었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자들이 머리에 덧쓰는 트레머리말이예요.”

“아니, 그것은 부잣집 연인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더냐?”

“제주에도 돈있는 부인네들이나 기생들이 탐을 낼 거예요. 어서 육지로 나가는 상인을 알아보시고 가채와 화장품을 많이 구입해오도록 하세요.”

“아우의 말대로 하겠다만 잘될지 모르겠구나.”

만석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밖으로 나가 상인을 알아보았다. 육지로 나가는 상인 중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을 찾았다. 만덕이 시킨 대로 가체와 화장품을 사오도록 하였다.

며칠 후에 육지로 나갔던 상인이 가체와 화장품을 사왔다. 가체와 화장품을 만석으로부터 받은 만덕이 말했다.

“오라버니, 제주에서 활동하는 매분구들을 모두 불러들이세요.”

“매분구를...”

이때에는 주로 방문 판매에 의하여 화장품과 화장구가 소비자인 여성들에게 전달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여성의 외출이 자유스럽지 못했으므로 일상 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외출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문 판매원인 매분구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파는 화장품을 사 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세상 이야기도 함께 전해들었던 것이다.   

“급하니 어서 불러들이세요.”

“알았구나.”

만석은 이곳저곳으로 연락을 하여 매분구들을 모이게 하였다. 매분구들은 객주인 만덕이 자신들을 찾는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건입포로 모였다. 매분구들이 모이자 만덕이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좋은 일거리를 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는 가체와 화장품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제주 관아 주변을 돌면서 가체와 화장품을 팔테니, 여러분들은 다른 지역을 돌면서 가체와 화장품을 팔기 바랍니다.”

가체라는 말에 매분구들은 실망하는 눈치였다.

“이곳 제주에서 가체를 할 만한 여인이 있을까요?”

“그럼, 이곳에 가체를 할 만큼 부자가 없어요.”

“아니요. 여자들이란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는 집이면 여자들이 가체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발로 얼마를 뛰느냐에 따라 내가 행가(일종의 성과급으로 많은 이익을 남긴 상인들에게 주는 상여금)을 드리겠소.”

행가를 준다는 말에 매분구들은 가체와 화장품을 들고 나섰다. 만덕도 이들의 뒤를 이어 제주 관기에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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