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은 기생에서 양민이 되고난 뒤 오빠인 만석을 찾았다. 제주에서는 만덕의 소문은 널리 알려졌다.
“그 좋은 기생을 왜 그만두나?”
“그러게. 관아에서도 기생에게는 함부로 못했다면서...”
“양민이래야 세금만 내지 뭐 좋은 것이 있겠어.”
사실 백성들의 말도 맞았다. 양민은 나라에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다. 기생은 세금을 내는 것이 없다. 더구나 제주에서 기생은 막강한 힘을 부렸다. 관청에 일을 청탁하기 위해서는 기생에게 돈을 주어야 가능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제주 기생들은 조선 제일의 기생이라고 하는 평양 기생 못지않게 비단 치마저고리를 입고 사치를 부려도 되었다. 이러한 생활을 뿌리친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만덕은 과감히 자신만의 생활,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만덕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만석도 이미 만덕이 양민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 저 왔어요?”
“그래, 장한 일을 했구나.”
남매는 손을 잡으며 기뻐하였다.
“이제 무엇을 할 생각이냐?”
“객주를 할 생각입니다.”
“객주라고?”
객주는 기원이나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시대부터라고 추정된다. 본래 객상주인이란 뜻으로 물상객주와 보행객주의 두 종류가 있다. 물상객주는 금융 기관의 역할을 하면서 돈이나 물건을 빌려준다든가, 어음을 발행하고, 환표(지금의 수표와 비슷함)를 발행하는 등 예금과 대출의 금융 업무를 담당하여 자본을 모음으로써 개항 후 새로운 자본 계급을 형성하게 된다. 보행 객주는 숙박업을 주로 하면서 위탁 판매업을 하며, 구전을 받았고, 상품의 흥정 매매에는 거간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보행 객주가 운영하는 숙박 장소에는 주로 양반이나 돈많은 상인들이 이용하였다.
“아우는 여자인데, 남자들만이 하는 일을 하겠느냐?”
“예,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돈이 없어서 기생이 되었고, 오라버니와 떨어져 사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만덕의 말에 만석은 눈물이 나왔다.
“모든 것이 이 못난 오빠때문이로구나.”
“지금 오라버니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럼, 내가 도와주마.”
“오라버니가 도와주시면 저야 좋지요.”
“어디에 객주를 차릴 것이냐?”
“건입포에 차리려고 합니다.”
건입포는 오늘날 제주항으로 산지포라고도 불리웠다. 이곳은 탐라국 시절부터 근대 개화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제주를 연결시켜주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다. 건입포에서 가까운 곳에 제주 관아가 있었다. 그러므로 건입포에는 제주를 드나드는 상인과 제주 관아를 찾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자리는 알아보았느냐?”
“몇 번 나가 좋은 자리를 찾아두었습니다.”
“얼른 나가보자.”
남매는 건입포로 나갔다.
“이곳입니다.”
만석은 만덕이 가리키는 자리를 보고는 입을 벌렸다. 만덕이 점찍은 자리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건입포 입구에 자리하여 제주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모두 거쳐가야만 하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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