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거상 김만덕

제주의 상인을 지배하다3

윤의사 2010. 7. 10. 10:48

칠성의 생각대로 물건을 팔자 상인들이나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다. 매분구들이 만덕객주에 대하여 좋은 소문을 많이 퍼뜨리자, 손님이 점점 늘어나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으며, 육지에서조차 제주의 특산품을 구하기 위해서는 만덕을 통해야만 품질 좋은 물건들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해졌다.

만덕은 객주로서는 주문받은 물건을 모두 대주지를 못했다.

“오라버니, 이제 창고를 크게 짓고, 배도 마련해야겠어요.”

“배까지...”

만석은 만덕이 사업을 키우는 것을 걱정하였다.

“너무 무리하는 것은 아니니?”

“아니에요. 이제 배를 사면 오라버니가 직접 육지로 가셔서 중도아를 거치지 말고 물건을 사오세요. 그럼 훨씬 물건을 싸게 팔 수 있을 것이에요.”

“내가 육지로 나간다고...”

만석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었다. 날씨가 좋으면 해남까지 하루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바다의 날씨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래도 만석은 육지를 구경할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떠 있었다.

사업을 크게 확장하느라 바쁜 만덕에게 제주 관아에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제주에서 만덕은 나라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제주 관아에서 맨 처음 찾는 큰 상인이 되었던 것이다. 만덕은 얼른 옷을 차려입고 제주 관아로 갔다. 이제 돈이 많고 부귀영화를 누릴만한 만덕이었지만 항상 무명저고리와 치마로 검소함을 잃지 않았다. 만덕이 제주 관아를 들어서려니 포졸들이 가로막았다.

“이곳은 여인네가 함부로 들어설 곳이 못된다오.”

만덕의 행색이 초라했기에 포졸들이 가로막은 것이었다. 칠성이 나서려고 하자 만덕이 손으로 손을 들었다.

“나는 만덕이라는 사람이오. 나를 찾는다고 하기에 찾았을 뿐이오.”

만덕이 점잖게 말하자, 그제서야 포졸들이 만덕을 들여보냈다. 호방이 만덕을 제주목사에게 안내하였다.

“김행수, 사업은 잘되는가?”

“영감의 배려로 잘되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에서 미역이 급히 필요한 모양이오. 그런데 미역을 구할 수 없어 큰일이오. 나를 도와주시오.”

제주목사는 김만덕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사실 제주목사로 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서울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었기에 나라의 명령을 잘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성심을 다해 미역을 구해드리겠습니다.”

여각으로 돌아온 만덕이 칠성을 불렀다.

“칠성아, 어서 미역을 구하거라.”

“행수님, 지금 미역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습니다.”

“그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너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더냐?”

오늘날에야 미역을 바다에서 직접 길러 제주뿐만 아니라 남해안 일대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미역은 바다에서 직접 채취해야 했는데, 오직 제주에서만 채취할 수 있었다.

만덕의 지시를 받은 칠성이 제주의 바닷가 마을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미역을 구할 수가 없었다. 점심을 때우기 위해 주막을 들른 칠성이 주모에게 말했다.

“주모, 미역을 어디에 가면 구할 수 있소?”

“미역을 구한다고요? 한번 성산으로 가보시오.”

“성산이라고요?”

“그곳에 미역이 많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칠성은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성산으로 갔다. 성산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있었다. 칠성은 미역을 말리기 위해 널어 놓은 집이 있나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저녁밥을 지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굴뚝에서 연기나는 집이 없었다.

“참으로 살기가 어려운 모양이구나.”

칠성은 가까운 집부터 찾았다. 마당에는 말리기 위한 미역이 널려 있었다.

“주인장 계시오.”

칠성의 말에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이시오?”

“미역을 사려고 왔습니다.”

“미역을요?”

“그렇소. 얼마면 이 미역을 파시겠소?”

“이 미역은 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한 것이오. 일없으니 나가시오.”

“미역을 팔지 않는다고요?”

칠성은 다시 한번 물었다.

“팔지 않는다 하지 않았소.”

노인이 큰소리를 치자 칠성은 물러나왔다. 미역이 마당에 널려있는 집을 찾았다. 마당에는 삐쩍 마른 할머니가 앉아있었다.

“미역을 사러왔습니다.”

“미역요? 안팔아요.”

칠성에게는 싸늘한 목소리만 들려왔다. 칠성이 몇 집을 돌아다녔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칠성은 내일 거래를 위하여 주막을 찾았다.

“주모, 이곳에선 미역을 팔지 않소?”

“왜 미역을 팔지 않겠어요. 이곳에서는 미역을 팔아야 먹고 사는데요. 그런데 작년에 흉년이 들지 않았소. 흉년이 들었다고 중도아들이 너무 값을 내려 깎으니 팔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칠성은 그제서야 미역을 팔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칠성은 주모를 불렀다.

“주모, 미역 가격을 중도아들보다 잘 드릴 것이니 마을 사람들을 모아주시오.”

칠성의 말에 주모는 신나는 듯 마을 사람들을 주막으로 불러모았다.

“여러분들이 중도아들에게 어던 가격으로 미역을 팔았는지 몰라도, 나는 그들이 사는 가격의 두 배를 드리겠소.”

칠성의 말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었다.

“그것이 정말이오.”

“나는 김만덕상단에서 왔소. 우리 김만덕행수는 신용을 기본으로 하고 있소. 그리고 앞으로 생산하는 미역을 높은 가격으로 사줄테니 우리를 믿고 거래를 해봅시다.”

칠성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환호를 하였다. 칠성은 마을 사람들에게 사들인 미역을 가지고 건입포 객주로 돌아왔다. 칠성은 이역을 거래했던 과정을 만덕에게 했다. 만덕은 칠성을 대견하게 생각하며 돈꾸러미를 내주었다.

“수고했다. 이것은 네가 고생한 행하로구나.”

“감사합니다.”

만덕은 미역을 제주관아에 가져다주었다. 제주목사는 만덕의 손을 잡으며 고마워하였다.

만덕은 이제 제주에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녀에게 재물은 점점 쌓여갔으나, 그녀는 더욱 절약했다. 이웃들은 구두쇠인 그녀를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돈을 모아 무엇에 쓰려고 하나?”

“수전노처럼 돈만 아는 인간 쓰레기야!”

그러나 만덕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남들이 무슨 말을 하던 자신이 하는 장사에 충실했다. 어느 덧 그녀가 가진 부(富)는 제주에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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