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거상 김만덕

제주의 상인을 지배하다2

윤의사 2010. 7. 6. 07:21

“행수님, 무슨 일이시어요?”

“오랜 만이예요.”

관기들이 만덕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인사를 마친 만덕이 가체를 내보였다.

“이것은 서울에서 유행하는 가체라는 것이야. 양반집 여인들이나 기생들이 많이 하고 다니거든. 이것을 하면 훨씬 아름다워질거야.”

만덕의 말에 관기들은 너도나도 가체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만덕이 가체의 가격을 말하자 관기들은 모두 가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한꺼번에 돈을 받지 않겠다. 너희들이 봉급을 받을 대마다 나누어서 값을 지불하면 되느니라.”

만덕의 말에 관기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이것으로 살 거예요.”

“나도요.”

만덕이 가지고 간 가체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팔렸다. 만덕은 관기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돈을 쓸데에 쓰는 것은 좋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 것에 대비하여 미리미리 모아놓도록 하여라.”

“명심하겠습니다.”

가체는 만덕뿐만 아니라 매분구들도 순식간에 팔아치웠다. 만덕은 가체를 판 매분구들에게 행가를 지급하였다. 행가를 받은 매분구들은 저마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만덕행수님의 일을 해주면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

“맞아. 행수님이 팔라고 주신 화장품도 열심히 팔아야겠어.”

“그럼, 그래야 또 행가를 받을 것이 아닌가.”

매분구들이 화장품을 팔러나가자, 만덕도 화장품을 들고 나섰다. 제주 관아에 들어선 만덕은 관리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나으리, 편안하신지요?”

“이게 누군가, 만덕행수가 아닌가?”  

관리들은 만덕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객주를 한다고 들었는데, 잘 되는가?”

“여자의 몸으로 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여자가 객주를 한다고 하는 것이 많이 힘들 것이야.”

“그래도 해야지요. 여자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지요. 여자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지요.”

인사를 나눈 후에 만덕은 화장품을 꺼내보였다.

“나으리, 마님들께 화장품을 선물로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에이, 이 사람아! 어찌 남자의 몸으로 아녀자에게 선물을 준단 말이오.”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남자들도 부인들에게 선물도 주면서 정을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행수가 많이 어려운 모양이나, 이것은 아닐세.”

관리들은 하나, 둘 만덕의 곁을 떠났다. 만덕이 화장품을 팔러 나선 첫날은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만덕은 실망하지 않았다.

“내 기어코 화장품을 팔리라.”

다음 날 제주 관아의 조회가 끝나고 관리들이 나서는 시간에 맞추어 만덕이 들어섰다. 관리들은 만덕을 보자 못본 체 하면서 돌아섰다. 만덕은 자신을 못본 체 하는 관리들을 뒤쫓았다.

“나으리, 마님이 화장품을 발라 예뻐지면 마님의 기분도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집안에 웃음이 가득하고, 집안 분위기가 좋으면 나으리께서 관아에 나와도 일이 잘 되실 것이 아니옵니까?”

“만덕이 객주에 몸담더니 이제 장사꾼이 다 되었구먼.”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살수밖에 없도록 하는군.”

돌아섰던 관리들이 하나, 둘 만덕의 주위로 모였다. 그들은 저마다 부인들에게 줄 화장품을 골랐다.

“만덕행수, 나는 어머님께 드리고 싶은데...”

“어머님께는 이 조두를 드려보세요.”

“조두를?”

관리는 의아하게 만덕을 쳐다보았다.

“조두비루는 녹두와 팥 등을 갈아서 만든 것이에요. 잘 닦이면서 얼굴이 희어지는 효과가 뛰어나답니다. 제가 가지고 온 조두는 전라도 고부 조두예요. 하도 잘 닦이고 얼굴이 희어져 나라에 진상하는 조두거든요.”

“나라에 진상가지 하는 조두라고...”

만덕의 말에 관리들이 다투어 화장품과 조두를 가져갔다. 제주 관아에서 물건을 팔고 온 만덕이 건입포 객주로 돌아오자 매분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행수어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요?”

“양반집 마님들에게는 화장품을 모두 팔았답니다. 이제는 촌에 사는 여인네들에게도 팔려고 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맞습니다. 행수어른이 좀 방법을 알려주세요.”

“특히 곡식이 모자라는 봄에는 더욱 어렵습니다.”

매분구들의 말에 만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화장을 한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할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고 나서 화장도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매분구들을 돌려보낸 만덕이 곰곰이 생각에 잠기었다.

“행수어른, 칠성이입니다.”

칠성은 풍랑으로 아버지를, 물질하던 어머니마저 잃어 고아가 된 아이를 만덕이 데려다가 심부름을 시키는 아이였다. 그런데 똑똑해서 만덕에게는 큰 힘이 되는 아이였다.

“무슨 일이냐?”

방 안으로 들어선 칠성이 말했다.

“행수어른, 아까 매분구와 나누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화장품이나 물건을 팔고나서 물건값은 일정하게 나누어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이로구나. 그럼 내일 매분구와 다른 상인들에게도 그렇게 물건을 팔도록 하자구나.”

“저의 소견을 받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니다. 언제든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하거라.”

칠성은 인사를 마치고 방을 나왔다. 만덕은 공부를 시키면 훌륭한 상인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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