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열은 걱정이었다.
“이번 뱃길은 보름 이상 걸릴 텐데.”
남편의 걱정을 고씨 부인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가 보름 안에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이웃에 살고 있는 안덕댁 아주머니가 도와주실 거예요.”
부부가 서로를 걱정하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장면을 보던 안덕댁이 거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내가 만석이 엄마가 아기를 생산할 낌새라도 나면 바로 올 것이니...”
“알겠습니다. 저는 아주머니만 믿겠습니다.”
김응열은 손을 흔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해남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고씨 부인은 손을 모으고 빌었다.
“용왕님이시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번에 저의 남편이 무사히 해남을 다녀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주에서 해남까지는 바람의 방향이 잘만 맞으면 하루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제주도와 그 부근에는 워낙 바람이 많아 누구든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자신의 운명을 알 수가 없었다. 고씨 부인은 어서 김응열의 장사가 잘되어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며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제주도는 2만 년 전에 이루어진 화산 활동으로 사방이 현무암 돌로 이루어져 있다.
땅바닥이 구멍이 송송 뚫린 현무암돌로 이루어지다보니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가 않았다.
도저히 벼농사를 짓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제주도 사람들은 주로 밭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돌이 많은 밭이었기에 작은 땅을 가지고는 가족들을 도저히 부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남자들은 대개 어부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어부로 살다보니 높은 파도를 만나 죽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 죽다보니 남는 건 여자들 뿐이었다.
이에 남자들은 부인을 두 명 내지 세 명을 거느리면서 놀고먹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갔다.
집안의 생계는 오직 여자들의 몫이었다.
여자들은 파도가 치지 않는 날이면 바다로 나가 소라와 전복, 미역 등을 따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를 삼다(三多)의 섬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바로 세 가지가 많은 섬이니 바람, 돌, 여자가 많기 때문이다.
김응열이 장사를 나간 지 얼마 안되어 고씨 부인은 아기를 생산할 낌새가 나타났다.
고씨 부인은 큰 아들인 만석을 불렀다.
“만석아, 어서 안덕댁아주머니를 불러오너라.”
“예!”
대답을 마친 만석이 득달같이 안덕댁의 집으로 향했다.
“왜 이리 뛰어 다니느냐? 다치면 어떡하려고...”
안덕댁이 뛰어오는 만석의 손을 잡았다.
“아주머니, 어머니가 빨리 오시래요.”
“그래, 동생을 생산할 모양이구나.”
안덕댁은 부랴부랴 만석의 집으로 갔다.
고씨 부인은 진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안덕댁은 만석에게 솥에 물을 끓이라고 한 후에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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