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거상 김만덕

부모님을 여의다1

윤의사 2010. 4. 4. 11:45

만덕의 집안은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여 30간이 넘는 큰 집에서 어려움없이 살았다.

만덕은 아버지의 장사수완을 눈여겨 보았다. 그러한 만덕이가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하여 아버지 김응열은 해남을 다녀오면 항상 만덕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만덕아! 아버지 왔다.”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그래, 여기 네 선물이다.”

“고맙습니다.”

만덕에 대한 김응열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아버지 김응열이 장사를 나가면 어머니 고씨는 만덕에게 세상을 용기있고 참되게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어머니, 참 재미있네요.”

“그래, 너는 항상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데 힘써야 하느니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나 만덕의 행복은 열 두 살 되던 가을에 빼앗아 가버렸다.

이 날도 김응열은 제주도의 특산품인 양태(대오리로 만든 갓의 챙)와 말총(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을 수집하여 해남으로 팔기 위해 떠날 참이었다. 고씨 부인은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였다.

“이제 나가면 보름 후에나 오실텐데, 따뜻한 진지라도 차려드려야지.”

다른 식구들이 잠에서 깰까 조심하면서 음식을 준비하였다.

“쨍그랑!”

밥을 퍼 담던 그녀의 손이 미끄러지면서 밥주발이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녀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뱃길은 가지 마시라고 해야겠는데...’

밥상을 차리는 그녀의 손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김응열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장사나갈 준비를 하였다. “진지 잡수세요.”

고씨 부인의 말에 김응열은 상 앞에 앉았다. 고씨 부인은 밥을 먹는 김응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길떠나는 사람에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씨 부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김응열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부인, 무슨 근심이라도 있소?”

고씨 부인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번 장삿길에 나가지 않으셨으면 해서요?”

“그것이 무슨 말이요?”

“...”

고씨 부인이 말이 없이 걱정스럽게 김응열을 쳐다보자, 김응열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시오? 이번 장사를 마치면 이제 어엿한 배 한 척은 구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 내가 굳이 배를 타지 않아도 될 것이니 안심하시오.”

그러나 고씨 부인의 마음은 무거웠다. 배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김응열을 배웅하며 집안으로 들어서는 고씨 부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만덕이 어머니를 위로하였다. 김응열이 해남으로 떠난 지도 어언 보름이 지났다. 보통 해남을 다녀오는 배는 보름만이면 제주로 돌아와야만 했다. 고씨 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입술이 말라갔다.

“왜 오시지 않는 것일까?”

고씨 부인의 말에 만덕이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강한 분이시잖아요. 곧 돌아오실 것이예요.”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러나 고씨 부인은 자꾸만 초조했다.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다. 고씨 부인이 숟가락을 들다 말고 놓았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진지를 드셔야 저희들도 먹지 않겠어요? 어머니께서 자꾸 초조해하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하나요?”

“아니다. 오늘은 웬지 밥맛이 없구나.”

“걱정이 많으시니 밥맛이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머니께서 진지를 드시지 않으면 저희들도 먹지 않겠어요?”

만석이까지 거들며 어머니를 재촉하였다.

“알았다.”

고씨 부인은 어렵게 숟가락을 들고 밥을 떴다. 그러나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고씨 부인이 상을 물리자 만덕은 부엌으로 가져가 설거지를 하였다. 만덕이 설거지를 하려고 그릇들을 함지박(통나무의 속을 파서 큰 바가지같이 만든 그릇)에 넣으려 할 때 놋그릇이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만덕이 고씨 부인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 놋그릇의 색깔이 이상합니다.”

만덕의 말에 고씨 부인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혹시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때 정낭으로 빠른 발걸음이 옮겨 왔다.

“만덕 어머니, 큰 일 났어요!”

부엌에서 뛰쳐 나온 고씨 부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큰 일이예요?” “배가 ……?”

“배가 어떻게 되었단 말이오?”

“배가 그만 바다에……!”

이웃 아주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만덕 어머니도 말을 하지 못하고 통곡을 하였다. 해남으로 장사를 갔던 김응열의 배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으로 바다에 가라앉은 것이었다. 이 배에 싣고 있던 물건은 만덕이네의 전재산이었다.

“이를 어찌할꼬?”

고씨 부인은 망연자실한 채로 기절하였다.

“어머니, 정신을 차리세요?”

만석과 만덕은 고씨 부인을 방으로 옮겨 뉘였다. 그리고 바닷가로 나가 아버지 김응열의 시신을 옮겨와 장례식을 치루었다.

'보고 배우는 인물사 > 거상 김만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인일보에 소개된 김만덕  (0) 2010.04.08
제주 한라일보에 소개된 김만덕  (0) 2010.04.04
세 가지가 많은 섬2  (0) 2010.03.28
세 가지가 많은 섬1  (0) 2010.03.25
머리말  (0) 2010.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