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호(胡)자 표지 달고 사막을 건너온 중앙아시아어 ②
그러다가 청나라 이후 중국도 오랑캐 범주에 들어가고(청나라가 여진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원래 되는 여진족의 일파인데 오늘날 중국인을 비하할 때 ‘되놈’이라고 쓴다.) 구한말을 겪으면서 일본, 서양 등이 역시 오랑캐로 통칭되고, 심지어 한국전쟁 이후에는 우리와 같은 민족인 북한 동포도 오랑캐가 되었다. 그런 만큼 호 자가 붙은 말이라고 해서 딱히 어느 지역에서 들어온 어휘라고 특정하기가 매우 까다롭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시기별로 호(胡)의 정체를 밝히는 연구가 역사만이 아닌 국어사 쪽에서도 있어야겠다. 이제 호 자가 붙은 어휘들을 살펴보자. 호각(胡角) : 유목민들이 부는 뿔피리다. 전투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쓰인다. 호감자 : 황해도와 경기도에서 고구마를 가리키는 말이다. 청나라를 통해 들어와서 그렇다. 호객(胡客) : 당나라 수도 장안에 거주하던 소그드 상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호녀(胡女) : 시대마다 달라진다. 전국시대 및 한나라 대에는 몽골이나 티베트계 여성, 수당 시기에는 소그드인, 원나라 때는 위구르 등 중앙아시아 여자, 청나라 때는 여진 족 여자를 가리킨다. 호두(胡桃) : 호두. 호에서 온 복숭아란 의미이나 복숭아하고는 달리 쓰인다. 호두는 이란 및 유럽 원산으로 서아시아를 거쳐 원나라, 고려로 들어왔다. 호떡 : 청나라식 떡이다. 청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라서 조선인들이 이렇게 지었다. 호떡 의 기원은 중앙아시아로 알려져 있다. 호란(胡亂) : 여진족의 나라 청국의 내습을 병자호란, 정묘호란이라고 했다. 호밀 : 중앙아시아 원산의 보리라는 의미로 호맥(胡麥)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호밀로 바뀌었다. 호박(胡朴) : 호박의 호는 일본이다. 멕시코 원산의 호박이 미국, 일본을 거쳐 1605년 조선 으로 들어왔다. 호봉(胡蜂) : 말벌이다. 이 호(胡)는 대(大)의 뜻이다. (호빵 : 중국 빵이 아니라 식품회사의 상표이다.) 호산(胡算) : 수효를 기록하는 중국 특유의 부호를 가리킨다. 중앙아시아 상인들이 쓰던 방 식이라 호산이라고 한다. 호악(胡樂) :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온 음악이다. 고려 우왕은 대동강 부벽루에서 호악을 친히 연주하고 화원에서 호가를 즐겼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호적(胡笛)을 불고 호 무를 추었다고 한다. 호적(胡笛) : 태평소다. 서남아시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 말기에 들어왔다. 호주(胡酒) : 청나라 말기, 즉 구한말에 들어온 고량주다. 호주머니(胡囊) : 유목민 복장에 있는 주머니다. 원래 중국 전통 복식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호콩 : 땅콩이다. 브라질 원산으로 청나라를 통해 들어왔다. 호파 : 만주에서 나는 파다. 호희(胡姬) : 몽골이나 티베트 계열 여성은 대개 호녀로 불리는데, 수당 시기에 호희라고 할 때는 소그드인 여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이백(李白)의 시에 나오는 호희는 소그드인 여성이다. 후추(胡椒) : 호(胡)지역의 추(椒)란 뜻으로 원래 호추였다. 인도 남부 원산으로 아라비아 상 인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오고,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들어왔다.
이재운/<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 저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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