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의 우리말 이야기

15. 남사당놀이에서 온 말 ①

윤의사 2009. 3. 24. 08:50

 15. 남사당놀이에서 온 말 ①

요즘에는 방송, 인터넷, 신문 등의 매체 발달로 새로 생긴 말이 쉽게 퍼지고, 그래서 새로운 말이 쉼없이 만들어진다. 그러다보니 검증되지 않은 채 퍼져 우리 언어 문화가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문법이 틀려도, 어법이 맞지 않아도 방송이 되고, 신문에 나오고, 더 심한 욕설이나 속어 따위도 인터넷 댓글에 마구 달라붙는다. 물론 옛날이라고 해서 말이 새로 생기지 않은 건 아니다. 속도가 느릴 뿐 새로 생기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래도 유행어를 만들어 내고, 이런 유행어를 전파하는 수단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남사당이었다. 수십 명에서 최대 백여 명에 이르는 남사당 단원들은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기예를 펼치는 게 주요한 일이지만, 이들은 바로 말을 나르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들이 쓰는 언어는 민중들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너나없이 그들의 말을 따라 썼다. 조선시대에 남사당만큼 민중의 언어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집단도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남사당이라면 단연 안성 남사당을 들 수 있는데, 안성장이 삼남대로를 깔고 앉아 한창 번성할 때는 적어도 두 팀 이상이 활동했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남사당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유행어와 안성장에서 만들어진 어휘가 이들 남사당을 통해 전국으로 흘러나갔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딴지걸다 - 씨름이나 태껸에서, 발로 상대편의 다리를 옆으로 치거나 끌어당겨 넘어뜨리는 기술을 딴지라고 한다. 남사당패들이 살판을 놀면서 자주 쓰는 기술이다.

살판나다 - 남사당의 땅재주 놀음 중에 살판이 있다. 매우 격렬하고 흥겨워 재주꾼들이 살판을 놀면 볼만했다는 뜻에서 ‘살판나다’는 재물이나 좋은 일이 생겨 생활이 좋아진다는 뜻으로 옮겨왔다.

얼른 - 남사당패의 은어로, ‘요술’이나 ‘마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술이나 마술을 부리려면 손놀림이 매우 빨라야 하는데, 이런 뜻에서 시간을 끌지 아니하고 바로라는 의미의 부사로 쓰였다.

마련하다 - 놋쇠를 만들기 위해 선별한 구리쇠 등의 일차 재료가 마련이다. 마련을 잘 가려야 높은 등급의 유기를 생산해낼 수 있다. 그래서 마련을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성이 들었던 데서 ‘마련이 많다’, ‘마련하다’ 등의 말이 생겼다. 이후 헤아려서 갖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속셈이나 궁리의 뜻으로 발전했다.

부질없다 - 놋쇠를 만들려면 마련을 녹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 부질, 즉 불질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런데 부질편수가 부질을 잘 못하면 놋쇠를 잘 만들 수가 없다. 여기에서 ‘부질없다’는 대수롭지 않거나 쓸모가 없다는 뜻이 생겼다.

트집잡다, 도구머리에서 왔나 - 갓은 구멍이 나기 쉬운데 이를 수선하는 기술은 안성장 내 기술자들의 솜씨가 뛰어났다. 특히 안성 도구머리(道基洞) 지역이 갓 수선으로 유명한데, 이들은 갓을 수선하면서 흠이 난 트집을 많이 잡아 수선비를 비싸게 타낸 데서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한 덩이가 되어야 할 물건이나 한데 뭉쳐야 할 일이 벌어진 틈을 ‘트집’이라고 하고, 공연히 조그만 흠을 들춰내 불평을 하거나 말썽 부리는 것을 ‘트집잡는다’고 하고, 트집잡는 사람을 가리켜 ‘안성 도구머리에서 왔나’라고 쓰였다.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 저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