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의 우리말 이야기

16. 남사당놀이에서 온 말 ②

윤의사 2009. 3. 30. 13:38

16. 남사당놀이에서 온 말 ②

일제가 패망해 열도로 쫓겨간 지 60년이 넘어 우리 사회에서 일본어 잔재가 거의 사라졌는데 아직도 일본어가 원음 그대로 쓰이는 곳이 더러 있다. 인쇄, 편집, 건설, 조폭 같은 분야인데, 이런 특정 집단에서 쓰이는 일본어는 마치 은어처럼 쓰이기 때문에 잘 없어지지 않는다. 궁중어 같은 경우도 일종의 은어이며, 군대, 첩보부대, 경찰 등에서도 그들만이 쓰는 은어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에 은어를 광범위하게 구사한 집단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 바로 남사당이다. 남사당 은어는 천민 계급에 속하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암호문처럼 쓰였는데 상당수가 일반 어휘를 거꾸로 만든 것이다. 요강을 강요로, 영감을 감영으로, 대감을 감대로, 방구를 구방, 부자는 자부, 부적은 적부, 사주는 주사로 쓰는 식이다. 단골(무당) → 골단, 광대 → 대광, 국수 → 수국, 담배 → 배담, 도깨비 → 개비도, 병신 → 신병, 작두 → 두작, 전라도 → 라도절, 창부(倡夫) → 붓창, 환갑 → 갑환, 서방(신랑, 남편) → 방서, 과부 → 부과, 신당(神堂) → 당신, 눈치쟁이(눈치꾼) → 치눈쟁이, 도적(도둑) → 적도, 도적질(도둑질) → 적도질, 박수(남자 무당) → 쑤백이, 보살 → 살보 남사당 은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숫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떤 원칙이나 의미가 따로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매우 독특하다. 1 → 제푼, 2 → 장원, 3 → 우슨, 4 → 죽은, 5 → 조은, 6 → 업슨, 7 → 결연, 8 → 얼른, 9 → 먹은, 10 → 맛땅 남사당이 사용한 주요 은어를 보자. 지난주에 적은 ‘민간으로 흘러간 어휘’는 빠져 있다. 가짜·거짓말 → 석부, 고기 → 사지, 고기장수 → 사지장수, 기생 → 생짜, 꾸지람하다 → 남소하다, 나쁘다, 보기 싫다 → 거실리다, 남자·총각 → 남자동, 넋 → 진오귀, 노름꾼 → 옴놀꾼, 노인·할아버지 → 감냉이, 눈 → 저울, 닭 → 춘이,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 → 대철지, 도망가다 → 망도질하다, 동생 → 아랫마디, 돼지고기 → 냉갈이사지, 두루마기 → 웃버삼, 떡 → 시럭, 매 → 타구리, 머리 → 글빡, 머슴 → 섬사, 목소리 → 설주, 무당 → 지미, 밉다·나쁘다 → 거실하다, 바보 → 여디, 발(버선·신발) → 디딤, 밥 → 서삼, 방 → 지단, 벼 → 까리, 변소 → 구성간, 보리 → 퉁이, 북·장고 → 타귀, 사랑하다 → 지순다, 살풀이 → 풀이살, 소리꾼 → 패기꾼, 손님 → 임소, 수양아버지 → 영수버자, 수양어머니 → 영수머녀, 수양아들·딸 → 속새, 쌀 → 미새, 아이 → 삐리, 악사·잽이 → 면사, 안경 → 저울집, 양반 → 철지, 어머니 → 머녀, 여자·처녀 → 처녀동, 옷 → 버삼, 음식 → 서금, 이리 오다 → 이리 실리다, 이불 → 덮정, 이빨 → 서삼틀, 잠 → 시금, 점쟁이 → 꾸리뭇쟁이, 죽다 → 귀사하다, 춤 → 발림, 푸닥거리 → 닥구리, 할머니 → 구망, 홀아비 → 애비홀, 환자 → 드러병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 저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