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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스캔들

윤의사 2006. 3. 11. 14:42
아, 왕과 대통령은 괴로워?

‘뭬야?’ 한동안 옛 왕비들이 쓰던 말이 우리들 입에서 떠나지 않은 적이 있다. TV 드라마의 단골 메뉴가 된 왕과 왕비 그리고 그들의 친족들이 권력을 두고 벌이는 드라마에 매번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수백 년이 흐른 21세기 한국 땅에 조선시대의 무풍활극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시작되고 국가가 성립된 이래로 반복되고 있는 왕과 대통령을 둘러싼 친인척 비리에 대해 해답은 우리 조상들은 어떤 슬기로움으로 대처했는지 오늘부터 2회에 걸쳐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 봅니다.

조선 최대의 스캔들

500년 명맥을 이어 온 조선이 점점 빛을 잃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왕의 친인척에 의한 비리 때문이다. 그 중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는 그 폐해가 매우 심각했다. 정조 때 홍국영에 의해 시작된 세도정치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조, 헌종, 철종을 대신해 외척들이 벌인 비정상적인 정치를 의미한다. 순조와 철종 때에는 안동 김씨가, 헌종 때에는 풍양 조씨가 정책 입안, 신하들의 인사, 관리 등용 등 국정의 모든 부분에 관여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정책과 관리 등용은 이들 친인척과 가깝거나 이들에게 뇌물을 준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이루어졌다. 그리고 뇌물을 바친 사람은 다시 일반 백성들에게서 그 이익을 충당해서 무고한 백성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도덕성을 포기한 세도 정권은 갖은 방법으로 관직을 매매하여 축재에 열을 올렸다. 매매의 대상은 중앙의 관직뿐 아니라, 지방의 벼슬자리 등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었으니, 감사 자리는 보통 5∼6만 냥, 수령 자리는 2∼3만 냥 안팎으로 거래되었고, 그 밖의 관직도 그 값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매관 매직이 성행하였다.
매관 매직은 관리들을 극도로 부패. 타락시켜 봉건 통치 질서를 파탄에 이르게 하였다. 이지용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형인 흥인군 이최응(李最應)의 손자이며 이희하(李熙夏)의 아들인데 완영군 이재긍(李載兢)에게 입양되었으니 고종의 종질이 된다. 그는 벼슬살이를 하는 동안 그는 뇌물을 받고 군수직 15개를 팔아 탄핵을 받는 등 결코 깨끗하지 못한 인물로 통했다. 그의 할아버지 이최응은 매관매직으로 재물을 모아 9개나 되는 곳간에 온갖 보화를 가득 쌓아두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번 권력을 쥔 친인척들은 왕이 성인이 된 뒤에도 권력을 돌려주지 않고 자신들의 정책을 승인해 주는 허수아비 임금 역할만을 하게 했다. 돈을 주고 벼슬을 산 관리들은 세금을 도둑질하여 국가 재정은 고갈되었다. 또한 권력을 잡은 세도 집안과 관리들의 부정과 비리는 계속되어 국가는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철종의 뒤를 이어 어린 고종이 임금이 되었을 때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으면서 안정적인 정치가 이루어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지나친 간섭은 결국 명성황후와의 대립을 가져왔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을 쫓아내기 위해 명성황후는 자신의 친족을 정치에 끌어들여 역시 국가를 어지럽혔다. 명성황후는 민씨라면 누구도 가릴 것 없이 관리로 특별 채용하였다. 사촌 오빠인 민승호를 비롯하여 겸호, 태호와 조카들인 영익, 영환, 영기 등 많은 민씨 세력들을 중요 관직에 임명하였다. 결국 왕이 친인척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조선은 그 운명을 다 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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