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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

윤의사 2006. 3. 11. 14:04
-내시의 역사
내시는 궁녀와 함께 궁궐 안의 온갖 잡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을 내시라고도 하고 환관이라고도 하는데, 정식 명칭은 내시이다.
내시의 역사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은왕조 시대에 강족(羌族)을 사로잡아 남자의 생식기를 자른 후 궁궐에서 일을 하게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시대에 내시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기록상으로는 9세기 흥덕왕 때이다. 고려 시대에 와서는 어릴 때 개에게 생식기를 물린 자를 뽑아 내시로 일하게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별다른 권세가 없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내시의 권세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흔히 정치적인 힘은 왕이나 대통령과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말을 한다. 내시들은 언제나 왕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왕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다. 이것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일에 간섭하고 끼어들면서 권세를 키워 나갔던 것이다.
고려 때에는 내시의 권세가 매우 커 일반 가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생식기를 잘라 내어 내시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고려사》 열전에 보면 뜻밖의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들이나 동생을 궁궐로 들여보내기 위하여 생식기를 자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내시가 세력을 얻어 영향력이 컸던 때는 고려 제18대 왕 의종(재위 1146∼1170년) 때이다. 이 때 정함이라는 내시는 행랑채만 2백여 간 되는 큰 집에 살면서 사치를 부렸으며, 백선연이라는 내시도 권력을 미끼로 횡포를 부렸다고 한다. 내시의 관직도 처음에는 7품 이상 올라갈 수 없었으나 나중에는 정2품까지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원나라의 침략을 받기 시작하면서 내시의 힘도 점차 약해졌다.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던 내시 제도는 일본에 의해 국권을 뺏기기 두 해 전인 1908년에 폐지되었다.

-내시 선발
내시가 되기 위해서는 '내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내시는 항상 왕의 곁에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중요한 비밀을 많이 알게 됩니다. 따라서 이 비밀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내시가 되려는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보거나, 물을 먹여 보거나, 땅에 눕혀 놓은 다음 코에다 모래를 넣고 문질러 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고통을 가하여 참을성을 시험했다고 한다. 이 때 신음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시 시험에 합격을 하면 대궐 안의 지리부터 익혀야 했다. 특히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내시일수록 궁궐의 비밀스러운 길을 잘 알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국가에 난리가 났을 때 왕을 모시고 무사히 궁궐을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리가 났을 때 도망치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내시부의 임무 네 가지
경국 대전에 적혀 있는 내시부는 하나의 관청으로, 그 조직과 임무가 비교적 자세히 적혀 있다. 첫 번째 임무는 '대내감선'인데, 임금이나 왕비 등이 먹는 음식을 감독하는 일이다. 두 번째 임무는 '전명'으로, 왕의 명령을 관리나 왕족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세 번째 임무는 '수문'으로, 궁궐을 수비하기 위해 문을 지키는 일이다. 네 번째 임무는 '소제'라고 하는 것으로, 궁궐 안을 청소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내시들이 하는 일을 규정한 것으로, 실제로는 궁중의 제사는 물론 왕실의 재산 관리, 궁궐의 각종 공사, 궁녀의 감독 등 궁궐 내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내시들이 있어야만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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