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663

오늘은 10월 유신 발표

박정희 대통령 10월 유신 단행 1972년 10월 17일,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발표했다. 박정희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명분을 가지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한 것 중 미니스커트나 장발 단속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또한 민족주의를 강조하여 반발하는 국민들을 민족주의적 동질성을 내세워 제어하고자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령을 발표하고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중임이나 연임제한에 관한 규정을 전혀 두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또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통령이 추천한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선출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으니,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장악하면 권력의 재생산은 ..

오늘은 소양강댐 완공

1960-70년대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것은 고속도로, 포항제철(현 포스코)와 소양강댐이라 하겠다. 빈곤 퇴치와 경제성장을 내 건 박정희 정부의 3대 국책사업은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지하철 건설, 소양강댐을 건설이었다. 소양강댐은 강원도 춘천시 동면 월곡리와 신북면 천전리 사이의 북한강 지류에 있는 댐이다. 댐의 높이는 123m, 제방 길이는 530m, 총저수량은 29억t으로 진흙과 돌로써 만들어진 사력 다목적 댐이다. 유역면적은 2,703㎢이며 만수위 때의 수면면적은 64.3㎢이다. 기존에 건설된 수력발전댐이 단지 전기를 얻기위한 것이라면 소양강댐은 용수 공급, 홍수 및 가뭄 예방 등의 수자원의 관리와 전력 확보를 위해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1966년 '한강 유역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댐..

오늘은 한국현대시 대표시인 10명을 선정

2007년 10월 14일 한국시인협회(회장 오세영) 창립50주년 맞아 한국현대시 대표시인 10명을 선정하였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서정주 의 ‘동천’, 정지용 의 ‘유리창’, 백석 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김수영 의 ‘풀’ ,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 , 이상 의 ‘오감도’, 윤동주 의 ‘또 다른 고향’ , 박목월 의 ‘나그네’를 선정하였다. 10대 시인에 버금가는 시인으로 김종삼, 이상화, 김영랑, 이육사, 김현승, 이용악, 조지훈, 신동엽, 박재삼, 기형도를 함께 선정하였다. 그 중 김수영의 '풀'이다. 풀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

오늘은 불국사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발견

1966년 10월 13일, 57년 전 도굴꾼이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훼손하였다. 범인은 바로 잡혔어도 석가탑은 보수가 필요했다.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던 중, 제2층 옥개석을 들어 올리다 나무지지대가 부러지면서 옥개석이 땅으로 추락하면서 깨졌다. 이때 탑신부에 봉안되어 있던 금동제 사리외함에서 다른 여러 사리장엄구와 함께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줄여서 '무구정경' 혹은 '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도화라국(都貨邏國)의 승려 미타산(彌陀山)이 법장(法藏)과 함께 당나라 무주(武周) 말년인 장안연간(長安年間, 701∼704)에 한문으로 번역하여 대장경에 편입한 것이다. '다라니(陀羅尼)'는 '주문(呪文)'이라는 뜻으로, 이 경전을 계속 주..

오늘은 언더우드 타계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1859 -1916년)로 한국명은 원두우(元杜尤)이다. 1859년 7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3세가 되던 1872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881년 뉴욕대학교를 졸업하고 1883년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원래 인도 선교사로 가기 위해 의학 공부를 하였으며, 1885년 미국 북장로교의 한국 파송을 받고 4월 5일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와 함께 한국에 왔다. 조선 정부가 선교를 허락하지 않아 의료선교사 알렌을 도와 광혜원(廣惠院)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쳤다. 1886년에 고아들을 모아 고아원(후에 경신학교)를 세웠으며, 1915년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설치해 연희전문학교로 승격시켜 초대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문서 선교사인 이..

10월 10일 오늘의 역사, 이봉창 의사 순국

이봉창은 1901년 8월 10일 서울 용산구에서 아버지 이진규와 어머니 밀양 손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건축청부업과 우차운반업을 경영하여 비교적 부유했으나, 아버지의 투병과 사기로 집안이 어려워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철공소 등을 떠돌며 노동을 하였다. 일본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대우로 현실을 체념하며 스스로를 일본인과 똑같은 일왕의 백성이며 조선인이지만 더욱 일본인다운 ‘신(新)일본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928년 11월 교토에서 거행되었던 히로히토 일왕 즉위식을 구경하러 갔다가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편지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치장에 10일 동안 구금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봉창은 ‘신일본인’이 되어도 일본인들은 여전히 자신을 식민지인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

오늘은 한글날, 훈민정음을 한글이라 부르게 한 주시경 선생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의 국어 학자 한글을 통해 우리의 민족 정신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우리 말과 글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체계를 세우는 한편,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수많은 교육 기관을 뛰어다니며 한글을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다른 이름은 상호, 호는 한힌셈이다.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주시경은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큰댁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돈벌이를 하며 공부했던 주시경은 신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여 야간에도 학교를 다닐 정도였다. 배재학당에 들어간 그는 마침 서재필의 눈에 띄어 만드는 일을 했다. 그때 우리말 표기가 제각각인 것을 알고, 맞춤법을 통일하기 위한 연구에 힘썼다...

오늘은 백마고지 전투가 개전(開戰)

북한이 대한민국을 ‘괴뢰’라고 칭했다. ‘괴뢰(傀儡)’는 ‘형식상으로는 독립적이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단체에 종속되어 그의 말을 따르는 단체나 정권 또는 꼭두각시로 남의 조종에 따라 주체성 없이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바로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의 꼭두각시로 한반도에 처음 발을 디뎌 북한 정권을 세웠던 것이다. 자신들이 괴뢰이면서 대한민국을 괴뢰라 지칭하는 김정은 무리가 가소롭다고 할까? 스탈린의 꼭두각시인 김일성은 6.25 전쟁을 일으켜 한국군 전사자 137.899명과 유엔군 40.670명, 민간인 사망 244.663명. 북한군 520.000명과 중공군 148.600명이 죽어서 가족에게 슬픔을 남겨 주었다. 부상자는 그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다. 재산상의 손실은 어마어마하다...

오늘은 자연보호헌장 선포일

자연보호 헌장 우리 조상들은 자연숭배사상이 있어서 자연을 경외시하였다.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한 사회였기에 자연의 영향을 크게 받기에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자연을 보호하고 가꾸는데 힘썼다. 고려 시대 이래로 산림 훼손을 막고 자연을 보호하고자 「송목 금벌 사목(松木禁伐事目)」을 시행하였다. 이는 소나무를 보호하며 벌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소나무를 베는 자는 곤장 1백 대를 때리고, 만약 조정 관리이면 파직시키고, 평민이면 곤장 80대에 다른 재물이나 노역을 징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산림이 황폐화되었다. 1910년 한일합병 당시 7억㎥에 이르던 우리나라의 임목 축적량은 1945년 광복 당시에는 약 2억여 ㎥로, 3분의 2 이상의 숲이 없어졌다. 연이어 발..

오늘은 강재구 소령이 산화한 ...

1. 해달같이 눈부신 기백과 정열 끝없이 타오르는 횃불을 보라 동지들을 구하려고 제몸 던졌네 저님은 살아있는 의기의 상징 내 나라 내 겨레 위해서라면 재구처럼 이 목숨 아끼잖으리 2. 장미같이 향기론 피를 품어서 거룩한 불사신의 이름 새겼네 지축을 흔드는 정의의 외침 너와 나 가슴마다 메아리친다 내 나라 내 겨레 위해서라면 재구처럼 이 목숨 아끼잖으리 생도 시절 2중대였던 강재구 소령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육군사관학교에서 ‘타오르는 횃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재구가‘이다. 강재구 소령은 1937년 인천에서 출생해 인천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16기로 입교한 강재구 소령은 1960년 3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65년 한국군 1개 사단의 월남파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