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663

11월 22일 오늘의 역사, 한국의 독립을 처음 언급한 카이로 회담이 개최된 날

대일본과 전쟁을 수행하면서 협력 및 전후의 일본 영토 문제를 의논하기 위한 카이로 회담이 1943년 11월 22일 열렸다.루스벨트, 장제스, 처칠 등 연합국의 수뇌들이 카이로에 모인 것이다. 중국의 장제스는 1932년 4월에 일어난 윤봉길의사 의거로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었다.장제스는 중국을 출발하기 전 김구 주석이 한국의 독립문제를 요청한 것이다.이것을 장제스가 요구하여 선언문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그 당시는 한국이란 나라를 아는 나라도 거의 없었고강대국들이 한국에 관심을 둘 때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장제스의 노력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1943년 11월 2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위한 최초의 국제선언이 있었다. 그 선언문에'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킨다' 는 구절이 들어가 ..

11월 21일 오늘의 역사, 독립문의 주춧돌이 놓여진 날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독립문은 사적 제32호로높이 14.28m, 너비 11.48m이다. 모화관의 정문인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웠다. 건양 1년(1896) 독립협회 발의로 3,825원을 모금해,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주춧돌을 놓는 의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1월 20일 완공했다.45×30㎝ 크기의 화강암 1,850개를 쌓아 만들어졌으며,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다.이맛돌 위에 앞뒤로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 쓰고 그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하였다.독립문은 대한제국 말에 우리나라가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났으며독립 정신을 백성들에게 홍보하기 위함이었다.서재필, 이상재, 윤치호가 중심이 된 독립협회가 세운 것으로교북동에 있던 것을 1978년 도시 계획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

11월 4일 오늘의 역사, 중공군의 개입으로 통일이 무너진 날

1950년 11월 4일, 중공군이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에서 북한군을 돕기 위해 우리 나라에 불법 침입했다.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6.25 남침으로 일단 후퇴했던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북진을 계속하여 압록강에 이르렀다.통일을 눈앞에 두었을 때에 중공군의 침입으로 통일이 무산되었다.하지만 중공은 우리에게 사과하기는 커녕 오히려 북한을 도와준 것을 자랑하고 있다.중국 독재자 시진핑 되놈은 "북한을 도와준 것은 대한민국의 북침에 맞선 싸움이며,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다"라고 북한의 주장과 같은 연설을 하였다.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정신차려야 한다.일본에게만 사과를 말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주장을 하는 시진핑 되놈에게도 사과를 요구해야 하지만오늘날 우리 위정자들에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