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10월 10일 오늘의 역사, 이봉창 의사 순국

윤의사 2023. 10. 10. 20:14

이봉창은 1901810일 서울 용산구에서 아버지 이진규와 어머니 밀양 손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건축청부업과 우차운반업을 경영하여 비교적 부유했으나, 아버지의 투병과 사기로 집안이 어려워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철공소 등을 떠돌며 노동을 하였다. 일본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대우로

현실을 체념하며 스스로를 일본인과 똑같은 일왕의 백성이며 조선인이지만 더욱 일본인다운 ()일본인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92811월 교토에서 거행되었던 히로히토 일왕 즉위식을 구경하러 갔다가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편지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치장에 10일 동안 구금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봉창은 신일본인이 되어도 일본인들은 여전히 자신을 식민지인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 처음으로 조국의 독립에 관심을 가지고 일본의 폭압 아래서 신음하던 조국을 구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건너갔다. 김구를 만나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동안 육신의 쾌락은 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김구의 지시로 18일 도쿄 교외에 있는 요요기 연병장에서 육군 관병식(觀兵式) 행사에 참석한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관리 몇 명과 호위병들만 쓰러뜨렸을 뿐 히로히토를 죽이지는 못했다.

폭탄이 터지고 나서 일본 경찰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잡았으나, 이봉창은 자신이 폭탄을 던졌다고 말할 정도로 당당했다.

이봉창은 지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김구가 시킨 일이라는 것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1932627일까지 총 9차례의 예심신문(豫審訊問)을 받았다.

비공개 재판으로  916일부터 930일까지 진행되어 대역죄의 명목으로 사형을 언도받아

1010일 이치타니(市谷) 형무소에서 오전 9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이봉창의 의거로 인하여 만보산사건 이후 악화되어 있던 한중 간의 관계가 호전되었다.

정부는 이봉창 의사에게 1962'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이봉창 의사

 

이봉창 의사 묘(효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