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663

오늘은 개천절

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나라에서 공식 지정한 국경일이다.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이 땅에 나라를 새로 연 날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남는다. 단군왕검이 나라를 새로 연 날은 음력 10월 3일이다. 하지만 1949년부터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하기 어렵다고 하여 양력 10월 3일로 정해놓고 행사를 하고 있다. 행사의 규모도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왕이 직접 개천절 행사에 참가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나, 오늘날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이나 태백산의 천제단은 대종교나 지역 행사에 그치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개천절 행사를 하는 제단은 대개 위는 둥글고 아랫부분은 네모진 모양이다. 네모 모양은 땅을, 둥근 모양은 하늘을 나타낸다. 태백산에 있는 천제단은 1991년 10월 23일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오늘은 88 서울올림픽 폐막

1988년 9월 17일 개막된 서울에서 개최된 서울올림픽이 16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988년 10월 2일 폐막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159개 IOC 회원국에서 23개 종목 237개 경기에 8,397명의 선수단이 참가, 237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기를 벌인 결과 소련이 금메달 55개로 메달 순위 1위를 차지했고, 동독이 37개로 2위, 미국이 36개로 3위를 차지했으며 개최국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4위를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태권도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발판이 되었다. 제24회 서울올림픽을 평가할 때, 동서의 이념분쟁 및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과 불화를 해소시키면서 세계평화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

9월 30일은 이재명 의사 순국일

1909년 12월 22일 종현천주교회당(지금의 명동성당) 앞에서 이재명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군밤을 팔았다. 얼마 후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하고 나와 인력거를 타고 가는 매국노 이완용에게 달려들어 품속의 칼로 수 차례 찔렀다. 그 뒤 도망가는 이완용의 허리 등을 다시 찔렀다. 이재명의 칼에 찔린 이완용은 갈비뼈 사이로 파고든 칼에 폐를 찔리는 치명상을 입었다. 이재명이 이완용을 죽이려고 칼로 다시 한번 찌르려던 순간 일본 경찰의 군도에 넓적다리를 찔려 중상을 입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대한의원(지금의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후송돼 일본인 의사들의 외과 수술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경성재판소에서 일본인 재판장 스가하라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가하라 재판장이 “피고와 같이 흉행..

오늘은 노태우 전대통령 중국 첫 방문

1992년 9월 27일, 31년 전 오늘 노태우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같은 해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를 맺었으며,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노태우 대통령이 양상쿤(양상곤·楊尙昆)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정부의 외교정책으로 ‘북방외교’를 내세웠다. 그리고 1988년 7월 7일에 '7·7선언'으로 ‘남북한 자유 왕래 및 북한과 서방, 남한과 사회주의권의 관계 개선 협력 등을 발표했다. 이후 헝가리와의 외교 관계 수립을 시작으로 공산권 국가들과 적극적 외교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도였던 냉전체제가 1989년 12월 미국과 소련의 몰타정상회의에서 종식이 발표되었고, 1..

오늘은 민족시인 정지용 타계

정지용 시인은 1902년 6월 20일 충북 옥천에서 아버지 정태국과 어머니 정미하의 4대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은 중국 등지에서 한의학을 배워 한때는 부유했으나, 홍수의 피해로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처가 친척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했다. 지용은 아버지의 방랑과 실패, 가난으로 인한 불행, 그리고 4대 독자로서 느꼈을 고독으로 “나는 소년적 고독하고 슬프고 원통한 기억이 진저리가 나도록 싫어진다” 고 회고한 바 있다. 고독과 가난은 정지용을 문학적 상상력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4대 독자인 정지용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감은 불행한 환경의 정지용에게 꿈과 문학적 상상의 나래를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정지용은 17세에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동인지 『요람(搖籃)』을 만들어 습작을 시작하였다. 성적이 우수했던 정..

오늘은 종말론으로 국민을 우롱한 이장림 체포

서울지검 강력부는 1992년 9월 24일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만 10월 28일 들려 올라간다’고 주장한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워 신도들의 재산 34억여 원을 헌납받아 가로챘다는 것이다. 그가 숨겨둔 채권 지급일은 휴거 이후인 1993년 5월이었다. 이 사기꾼은 성경에 나오는 7년 환난설, 천년왕국설 등을 짜깁기하고 유럽 연합 출범 등의 세계 정세를 교묘하게 이용해 ‘시한부 종말론’ 이론을 완성했다. 그의 시한부 종말론은 ‘휴거(携擧)설, 예수의 공중 재림 때 허공으로 들려 올라간다’는 것이다. ‘휴거’는 ‘이끌려 올려진다’라는 뜻이다. 즉 기독교에서 세상이 다시 심판을 받게 되면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하늘로 불려 올려진다는 것이다. 곧 살아 승천한..

오늘은 김두한 국회의원의 오물투척사건

국내 최대의 삼성재벌이 1966년 5월 24일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이 시설재로 위장하여 OTSA(사카린 원료) 58톤을 밀수하여 그중 1,403포를 유통시킨 일이 있었고, 밀수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부산세관은 1966년 6월 1,059포대의 사카린을 압수하고 벌금 2,000여만 원을 부과하였다. 사카린밀수사건 배후에 대한 논란이 일자 박정희 대통령은 밀수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지시하였지만, 야당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였다. 이 무렵 박정희 대통령은 5대 사회악으로 ‘밀수, 마약, 도벌, 깡패, 사이비 기자’를 꼽았기에 국민들의 관심으로 떠올랐다. 또 한편으로는 중앙정보부가 삼성의 밀수를 묵인하고 정치 비자금을 만든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진상조사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이 사건은 9월 15일..

오늘은 서울에 옥외 무인 공중전화기가 개통

휴대전화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88년이다. 삼성에서 개발한 1G 방식의 휴대폰이나 크기가 거의 무전기 수준이었다. 더구나 가격이 400-500만 원대(현 화폐가치로 하면 1200-1300만 원대)로 일반 국민들이 사용하기에는 고가이기에 1990년대 후반에서야 2G 기술의 상용화와 휴대폰 가격의 하락으로 대중적으로 보급되었다.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이 공중전화이다. 공중전화는 휴대폰이 나오기 전에는 집 밖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다. 그 시대 소식을 전하기에 공중전화만 것이 없었다. 가끔 동전을 먹고 먹통이라 애태우기도 했고, 전화 부스가 밤새 취객들의 간이화장실이거나 침실로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연인이나 멀리 떨어진 가족, 그리고 군대 간 자식들..

홍범도의 진짜 모습은?

홍범도의 흉상 이전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홍범도의 실제를 알려주는 글이 있어 소개한다. 9월 20일 오늘 동아일보 에 '빨치산이 가르쳐준 빨치산의 의미'가 그것이다. 역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이다. 더하여 1950년 6.25 전쟁은 소련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남침에 의하여 200만 명이 희생되었다. 이 책임은 북한의 김일성, 소련의 스탈린, 중공의 마오쩌둥이 져야만 하는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유시 참변 이후 무장독립운동이 일시적으로 쇠퇴한 것은 홍범도가 직, 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군인을 키우는 육군사관학교에 홍범도의 흉상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철도의 날

9월 18일 오늘은 ‘철도의 날’이다. 왜 9월 18일이 철도의 날로 지정됐을까? 경인선은 1896년 3월 29일 주한 미국전권공사인 기업가 미국인 제임스 R 모오스가 한국 정부로부터 부설권을 허가받아 인천 우각현(지금의 도원역 부근)에서 공사를 착수하였다. 그러나 철도 부설에 대한 욕심을 가진 일본이 거짓 소문을 퍼뜨려 미국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로 계속하지 못했다. 결국 제임스 R 모오스는 일본인의 경인철도회사에 양도하였다. 경인철도주식회사에서 1899년 4월 23일 철도 공사를 다시 시작해 1899년 9월 18일 인천-노량진 간 33.2km 구간의 단선이 한국 최초로 개통된 날을 기념해 철도의 날로 지정되었다. 개통 당시 역 7개, 증기기관차 4대, 객차 6량, 화차 28량에 직원 119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