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 21

삼국 간에는 언어가 통했을까?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같은 언어를 썼을까, 아니면 다른 언어를 써서 서로 대화할 때마다 통역관이 필요했을까?본래 한국어는 알타이어에서 발생해 원시 한국어로 발전했으며, 여기에서 신라어와 백제어는 원시 한국어로, 고구려어는 원시 부여어로 분화되었다. 삼국 모두 언어의 뿌리가 같기 때문에 문법이나 조어 방법이 같았다. 다만 일부 어휘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결론을 말하자면, 고구려와 백제 지배층의 언어는 같았으며, 백제 하층민의 언어와 신라의 언어 또한 같았다고 볼 수 있다.고구려와 백제 지배층의 언어가 한 뿌리라는 사실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내용으로 추측할 수 있다.먼저 『삼국사기』 고구려 장수왕(재위:413~491)편에는 백제에서 고구려로 투항한 만년(萬年)과 걸루(桀婁)라는 장수가 나..

비단장사 왕서방

비단장수 왕서방 명월이 한테 반해서비단 팔아 모은 돈 퉁퉁 털어서 다 줬어명월이 하고 살아서 왕서방 기분이 좋구나비단장수 왕서방 명월이 한테 반해서비단 팔아 모은 돈 퉁퉁 털어서 다 줬어밥이나 먹어도 명월이 잠이나 자려해도 명월이명월이 생각이 다 나서 왕서방 병들어 누웠어돈이가 없어도 띵호와 명월이 하고 살아서왕서방 기분이 좋구나 명월이 하고 살아서왕서방 죽어도 괜찮다밥이나 먹어도 명월이 잠이나 자려 해도 명월이비단 팔아 모은 돈 모두 털어 버리고 돈 한 푼 없는왕서방 기분 좋구나명월이 하고 살아서 왕서방 기분이 좋구나  1938년에 가수 김정구 님이 발표한 만요(희극가요)인 '왕서방 연서'는  부유한 화교 상인이 기생 명월이에게 품은 연정을 소재로 한 노래로 당시 일제강점기였고 부유한 화교상인이 많았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설치

1925년 6월 8일 일제에 의해 조선사편찬위원회가 조선총독부 부설 한국사 연구기관인 조선사편수회로 이름을 바꾸고 독립된 관청으로 격상되었다. 그 결과 조직이 확대 개편되어 일제는 조선의 정신과 역사를 왜곡하고 가르쳐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한국인을 쉽게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고문으로 을사오적 중 권중현, 이완용이, 그리고 박영효를 임명하고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을 회장으로 하였다. 변절한 최남선도 위원으로 참여하였다.일제가 한국사를 본격적으로 왜곡한 계기는 3.1운동이었다. 거족적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에 놀란 일제는 한국인의 뿌리인 한국사를 왜곡할 필요를 알게된 것이다. 1932년~1938년 사이에 일제의 식민통치에 유리한 자료들만 선택해 편집한 조선사> 37책, 조선사료총간> 20종,..

문재인은 이 칼럼을 보고 느끼는 바가 없을까?

[양상훈 칼럼] 文, 잘린 아이 손목 앞에서 궤변 또 해보길 (chosun.com) [양상훈 칼럼] 文, 잘린 아이 손목 앞에서 궤변 또 해보길양상훈 칼럼 文, 잘린 아이 손목 앞에서 궤변 또 해보길 올해로 30년 돼 가는 수십, 수백만 北 주민 아사 일제 때도 없던 일 그 시기 북 정권은 세계 최대 김씨 묘 건축 북에 가 발전 찬양한 文 탈www.chosun.com문재인은 이 칼럼을 제발 보기를 바랄 뿐이다.하지만 문재인은 이 칼럼을 보고도 모른 척 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충일

어제는 24절기 중 9번째 절기가 6월 5일 망종(芒種)이다.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芒)의 종자(種)인 보리를 수확하고 논에 모를 옮겨심는데 적당한 절기이다.“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오” ,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등농사 관련 속담이 많은 이유다.영호남 지방의 농촌에서는 이모작을 하였기에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하느라 이 맘 때가 가장 바쁘다.그래서 나온 말이 “망종엔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정도로 일손이 부족한 시기다.망종의 풍습으로는 ‘보리 그스림’과 ‘망종 보기’가 있다.호남지방에서 행해지는 '보리 그스름'은 아직 남아있는 풋보리를 베어다 불에 그슬려 먹으면다음 해 보리농사가 풍년이 된다고 믿었다. 또한 그슬린 보리를 밤이슬에 맞혀 먹으면 건강해진다고도..

현충사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목포에서 인천까지 서해안 고속국도가 건설되었다. 고속국도를 달리다 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바다를 가로지른 서해 대교와 드넓은 바다가 보였다. 선조임금을 비롯한 대부분 관리의 반대에도 12척의 배를 가지고도 바다를 지키고자 했던 이순신 장군의 미래를 보는 혜안이 보이는 듯 했다. 장군이 바다를 중시했듯이 오늘날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니 말이다.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에는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가 있다. 숙종 32년(1706)에 이 고장 선비들의 힘으로 사당이 세워졌고, 다음 해 왕이 현충사란 현판을 내렸다.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잠시 쇠락했으나, 이충무공 유적 보존회와 동아일보사를 중심으로 국민들의 뜻을 모아 1932년 6월 5일에 다시 지어졌다. 오늘날처럼 현충..

임칙서가 아편을 소각

중국은 편무역을 통해 영국(동인도회사)에 비단·차·도자기를 수출하고, 영국에서 모직물·면직물·은을 들여와 항상 흑자무역을 이루었다. 적자를 보는 영국에서는 흑자로 돌리기 위해 삼각무역을 추진하였다. 즉 청나라로 들어간 은을 가져오기 위해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청나라로 밀수출하였다. 청나라에서는 아편중독자가 사회문제가 되었고, 은의 대량 유출이 이루어졌다. 임칙서는 황제 도광제의 아편을 엄금할 것을 진언하고 아편을 막는데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공으로 1839년 흠차대신(欽差大臣:특정 사건에 대해 전권을 위임받은 특별 관리)이 되어 광동성의 아편무역의 단속을 명령받았다. 그는 "아편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2만여 상자,1000t이 넘는 어마어마한 아편에 ..

해우소(解憂所)가 화장실이 된 까닭

경봉(鏡峰)스님(1892-1982)이 양산 통도사 극락암 호국선원 조실로 머물 때 해우소(解憂所)라고 써서 화장실에 건데서 유래되었다. 당시 소변을 보는 곳은 휴급소(休急所)라고 써서 달았는데, 이 말은 널리 쓰이지 않는다. 경봉스님은 1953년에 호국선원 조실로 추대되었는데, 아마 이 무렵에 해우소란 명칭을 지으셨다. 경봉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문(法門)을 통해 해우소라고 한 이유를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일이야!그런데 중생들은 급한 일은 잊어버리고 바쁘지 않은 것은 바쁘다고 해!휴급소라고 이름한 것은 ​'쓸데없이 바쁜 마음 쉬어 가라'는 뜻이야!그리고 해우소라고 한 것은 '쓸데없는 것이 뱃 속에 있으면 ​답답하고 근심 걱정이 생기는데, 그것을 다 버리..

[박정훈 칼럼] 文 회고록과 평산마을 '이상한 고양이'

이런 사람에게는 진짜 국민 세금으로 주는 연금이 아깝다.[박정훈 칼럼] 文 회고록과 평산마을 ‘이상한 고양이’ (chosun.com) [박정훈 칼럼] 文 회고록과 평산마을 ‘이상한 고양이’박정훈 칼럼 文 회고록과 평산마을 이상한 고양이 文의 인식 체계엔 환각과 망상 요소가 뒤섞여 있다 잊혀지겠다던 인격과 잊혀지기 싫어하는 또 다른 인격이 공존하는 듯 하다www.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