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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解憂所)가 화장실이 된 까닭

윤의사 2024. 6. 2. 13:59

경봉(鏡峰)스님(1892-1982)이 양산 통도사 극락암 호국선원 조실로 머물 때 해우소(解憂所)라고 써서 화장실에

건데서 유래되었다. 당시 소변을 보는 곳은 휴급소(休急所)라고 써서 달았는데, 이 말은 널리 쓰이지 않는다.

경봉스님은 1953년에 호국선원 조실로 추대되었는데, 아마 이 무렵에 해우소란 명칭을 지으셨다. 경봉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문(法門)을 통해 해우소라고 한 이유를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일이야!
그런데 중생들은 급한 일은 잊어버리고 바쁘지 않은 것은 바쁘다고 해!
휴급소라고 이름한 것은 '쓸데없이 바쁜 마음 쉬어 가라'는 뜻이야!
그리고 해우소라고 한 것은 '쓸데없는 것이 뱃 속에 있으면 답답하고 근심 걱정이 생기는데, 그것을 다 버리라'는 거야!
휴급소에 가서 급한 마음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걱정을 버리면 그것이 바로 도()를 닦는 거야!”

 

그 후로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라 불리게 되었다.

경봉스님의 말씀처럼 현대의 바쁜 생활을 쉬어가기도, 근심 걱정도 버리는 해우소의 세계에 들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사실 경봉스님은 열네 살에 어머니를 잃고 충격을 받으면서 생사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안고 통도사로 출가를 하였다. 사미 시절에 ‘종일 남의 보물을 세어도 자기에게는 반푼 어치도 이익도 없다.’는 구절에 큰 감명을 받고 참선을 결심하였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 내원사의 혜월스님이었다. 혜월은 자신을 찾는 스님들에게 『선문촬요(禪門撮要)』 중에서 한 문구를 지적해 해석을 시켜보는 것이었다. 초심자로서는 우선 한문도 어렵겠거니와 뜻을 알기란 여간 어려운 책이 아닌 게 바로 『선문촬요』이다.
경봉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운수의 길에 올랐다. 무엇인가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버티고 서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과거 큰 스님들은 이미 깨달았기에 교화와 보림의 수단으로 운수를 하였다면, 경봉스님의 운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구름처럼 바람부는 대로 떠다니고, 물처럼 흘러다닌다고 해서 운수(雲水)이다.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나, 조정에서 일이 뜻대로 안 되거나 하면 곧잘 전국 유람을 떠난다. 스님 말고도 화담 서경덕이라던가 토정 이지함 같은 사람들도 운수를 퍽 즐겼다.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으면서 의식을 한번 바꾸기에 좋은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경봉스님도 전국을 떠다니며 사람 사는 모습도 구경하고 각종 물산도 구경했다. 그 결과 서른 다섯 살에 통도사 극락암의 산림을 맡아 중생들에게 강설을 하며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통도사에서 중생을 인도하던 경봉은 1982년 7월 17일 그와 그의 세계를 동시에 품어안고 한 세계의 막을 내려 버렸다. 향년 90세, 법랍 74세였다.
시자가 최후 문답을 청했다.
“스님께서 가시면 스님이 보고 싶어질 겁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경봉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했다.
“한밤중 삼경이 되거든 대문 빗장을 만져보거라.”
이것이 경봉스님의 유명한 열반송이 되었다.
경봉스님은 18세부터 하루도 거른 일이 없는 일기장이 남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경봉스님이 노닐다 가신 빈집을 다비하였는데 사리가 나왔네, 안 나왔네로 한때 어리석은 후학들이 공연한 말씨름을 하기도 하였다.(사진: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