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거상 김만덕

기생을 어머니로6

윤의사 2010. 5. 12. 10:49

목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관아로 들어서는 목사의 시선이 막 지나가는 순간 만덕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살짝 드러난 만덕의 얼굴은 목사의 눈에 콱 박히고 말았다. 더우기 화장한 얼굴을 도로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큰머리도 벗어던진 뒤라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 단연 돋보였던 것이다.

“워…….”

목사는 발을 멈추었다

“이름이 뭐냐?”

“만덕이라고 하옵니다.”

“만덕이라...”

목사는 체면 때문에 더 묻지는 못하고 자신의 자리로 가면서도 아쉬워 한 번 더 고개를 돌려 만덕의 얼굴을 다시 훔쳐보았다.

이날 신임 목사 환영 잔치는 그야말로 만덕의 독무대가 되고 말았다.

만덕의 입에서 나오는 시는 억지로 운율을 맞추거나, 중국 사람들이 지어놓은 글들을 주워 그럴 듯하게 편집하거나 또는 억지로 시적인 정취를 쥐어짜낸 사대부들의 시와는 달리 팔팔하게 살아 있었다. 또한 그가 노래라도 한 곡조 부르면 그만 좌중은 흥에 겨워 아예 숨을 끊었고, 그가 춤이라도 한사위 올리면 여기저기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에 불길이 번졌다.

데뷔 무대는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만덕을 지켜본 관리들은 그녀에게 수청을 요구할 태세였다. 이에 만덕은 목사에게 술을 권하면서 많이 먹어 정신이 없는 척 하였다.

“얘가 왜 이래. 처음 나오는 자리라 뭣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행수기생이 목사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목사도 만덕을 욕심냈지만 포기하는 눈치였다.

“내가 처음이라 용서하는 것이다. 다음에 또 이러면 용서하지 않을테다.”

처소로 돌아온 만덕은 고민을 하였다. 만덕은 어머니 월중선을 찾았다.

“아니 무슨 급할 일이기에 이 밤중에 왔느냐?”

“어머니와 의논할 일이 있어서요?”

“의논할 일이라니요?”

“저는 일패가 되고 싶어요. 남자들과 잠을 잔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어요.”

월중선은 만덕의 마음을 알고도 남았다. 자신이 강요하다시피 하여 기생이 된 만덕이 아니던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남자들과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지 어머니와 의논하고 싶습니다.”

월중선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스스로 머리를 얹는 것은 어떻겠느냐? 기생이 머리를 얹었다는 것은 곧 서방이 있는 남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월중선의 말에 만덕이 기뻐하였다.

“알겠어요.”

만덕은 머리를 얹고 잔치에 참여하였다. 제주의 관리나 양반들은 머리를 얹은 만덕의 서방에 대해 궁금해 하였다.

“대체 만덕의 서방이 누구일까?”

“아니면 남자들과 잠을 자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자신이 머리를 얹은 것은 아닐까?”

“설마, 그랬다가는 곤장을 맞고 죽을 지도 모르는데...”

만덕은 관리와 양반들이 수군대자 나섰다.

“나는 진정 한 남자의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워낙 지위와 신분이 고귀한 분이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지위와 신분이 고귀하다는 말에 더 이상 만덕이 머리를 얹은 것에 대해 수군거림은 사라졌다. 하지만 만덕에 대한 남자들의 사랑과 질투는 계속되었다.

  만덕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제삿날이면 아무리 중요한 잔치가 있어도 오빠인 만석의 집을 찾았다. 만석은 큰아버지집에서 살다가 혼인을 하여 독립을 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었다. 오빠가 어렵게 살기에 제사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기에 어려움이 많았기에  만덕은 음식을 모두 준비하여 오빠집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만덕은 옛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지낼까?’

‘내가 기생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떳떳하게 오빠집을 찾을 수 있을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오빠집에 도착하였다.

“오라버니, 만덕이가 왔어요.”

만덕이 들어서자 올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올케는 만덕이 준비해온 음식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먹고 살기가 어려운 가운데 제사 음식은 반갑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덕을 맞는 오빠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우야, 이제부터는 제삿날이라고 하더라도 오지 말거라.”

만석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오라버니, 무슨 말씀이세요?”

올케도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여보, 무슨 말씀이세요?”

하지만 만덕은 만석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 주변에서 내가 기생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모양이군. 특히 조카들에게 영향이 있을까 두려운 모양이네.’

만덕은 만석의 마음을 알아채고 억지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만덕은 만석에게 인사를 한 후 오빠집을 나왔다. 만덕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져 먹었다.

‘오라버니, 기생에서 벗어나는 날에 다시 오겠습니다.’

만덕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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