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거상 김만덕

기생을 어머니로4

윤의사 2010. 5. 3. 20:13

며칠 후에 만덕은 제주 관아로 갔다. 관기를 뽑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바야흐로 입단 시험이 치러졌다. 지원자들은 일일이 면접 고사를 치렀다.

“만덕.”

“예.”

“춤추고 노래하라.”

만덕은 월중선이 노래하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그녀는 자신있게 월중선의 춤사위를 따라 선보였다. 이를 본 관리들은 감탄하였다.

―춤 : 신선의 딸이로다.

―노래 : 내 귀가 아깝다.


“ '반월(半月 )' 이란 글제로 시 한 수 지어라. “

만덕은 자신이 알고 있던 글들을 바탕으로 시를 지었다.


곤륜산의 옥을 캐어 만든 저 고운 빗,

견우 떠난 서러움에

직녀는 그만 푸른 하늘에 던져버렸네.


“음, 이백 두보가 안 부럽구나.”

 

일단 네 가지 시험 중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여 교방(敎坊; 관기 교습소)에 입학할 수 있었다. 교방 입학생은 10명 정도였다. 모두 열다섯 미만의 앳된 소녀들이었다. 신입생들의 사연은 가지가지였다. 반장을 맡고 있는 계월이는 관기였다가 은퇴한 어머니를 대신해 들어온 탓인지 벌써 관기에 대해서 훤했다.

“기생, 이거 잘만 하면 과거 급제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직업이야. 난 엄마 덕분에 사대부 집 계집애들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았어.”

교방에서는 저마다 자신들을 소개하느라 시끄러웠다. 만덕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용히들 해, 수업 시간이다.”

반장 계월이 뛰어 들어오면서 소란스런 교방에 대고 소리쳤다 만덕도 얼른 자리에 앉았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1교시를 맡은 사람은 김 교수. 제주목에 부임한 지 구백일이 다 되어간다며 요즈음에는 서울의 관리 어디라도 들어가 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여러분은 아주 중요하고도 어려운 직업을 선택했다. 사실 여러분이야말로 우리나라 문화 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 귀한 인재들이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여 훌륭한 기생이 되도록 해라. 이번 시간은 관기개론을 배울 차례이다.”

철없는 신입생이 김교수에게 난데없이 질문을 하였다.

“교수님, 월급은 얼마예요?”

“내 월급은 한 철에 쌀 다섯 가마, 현미 다섯 가마, 전미 두 가마, 콩 여덟 가마, 보리 네 가마, 명주 한 필, 베 아홉 필, 종이돈 백 장(쌀 넉 되 가치)이다.”

“와, 되게 많네요. 교수니, 금방 부자되겠어요. 그런데 저희들은 얼마나 받아요?”

“종9품이 현미 두 가마에 전미 한 가마, 콩 한 가마, 베 한 필, 종이돈 한 장이니까 너희들도 그에 준할 것이다. 계절이 바뀌는 첫 달, 즉 3, 6, 9, 12월의 14일에 줄 것이다.”

“겨울에는 더 적게 준다면서요?”

“겨울에는 현미 두 가마에 콩 한 가마만 준다더라.”

“아휴, 그걸로 어떻게 겨울을 나지.”

“얘는 뭘 몰라. 해웃값이라는 게 있잖아?”

그러자 교방은 또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자, 그만하고 이제 관기개론에 들어가자. 에, 교방 교육은 개론과 함께 춤, 노래, 가야금 등 악기 연주법, 시 창작법, 의술 바느질 등을 차례로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런 뒤 여러분은 국가 공무원으로서 나라에 봉사해야 한다. 즉 공식 연회에 참석하여 관리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흥을 돋우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특수한 위치에 있으므로 양반집 부녀자와 똑같이 사치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즉 얼마든지 좋은 옷을 입어도 되고 얼마든지 좋은 장신구를 써도 좋다.”

복식이 곧 신분을 나타내던 이때 옷과 장신구를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건 대단한 파격이다.

“돈이 있어야 사치를 하지요?”

“월급 가지고 사치하려다가는 밥을 굶어야겠지만 그건 알아서 할 일이다.”

김 교수의 강의는 이렇게 끝나고 행수기생 동선의 실무 교육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국가 공무원이니만큼 출퇴근 시간을 어기면 안 된다. 그만큼 나라에서 해주는 복지 혜택이 쏠쏠하니라.”

“도대체 근무 시간이 얼마나 길길래 복지 혜택이 좋아요?”

“원척적으로 묘시(오전5시~오전7시 사이)에 출근하고 유시(오후 5시~오후7시 사이)에 퇴근하지만, 겨울철같이 낮이 짧을 때에는 근무 시간이 진시(오전7시~오전9시 사이)에서 신시(오후3시~오후5시 사이)로 좀 줄어든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아침 조회에 늦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아전놈들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니까.”

“잠은 어디서 자요?”

“원칙적으로 지금처럼 기숙사 생활을 할 수는 없다. 재주껏 집을 한 채씩 구하도록 해라. 하긴 늙도록 관아에 붙어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건 능력 문제이다. 우리 조선에는 전국적으로 약 2만 명이나 되는 관기가 있다. 이것은 전인구의 0.5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그러니만큼 뛰어난 기생이 되는 데도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행수기생의 강의가 끝나자 반장 계월이 나서서 호들갑을 떨었다.

“얘들아, 사실 이 행수기녀가 제일 무서운 사람이야. 우리끼리는 코머리라고 불러도 돼. 이 코머리한테 잘 보여야 하거든. 때때로 뇌물도 바쳐야 한다나봐.”

만덕은 계월의 말을 명심해 들었다.

3교시는 언어 예절, 4교시는 음률, 5교시는 춤추기, 마지막 6교시는 글과 그림 익히기였다. 음률과 춤추기는 월중선의 모습을 늘 옆에서 지켜보던 것이므로 만덕은 무난히 할 수 있었다. 다만 언어 예절과 글과 그림 익히기 시간은 남보다 더 열심히 익혔다.

교방의 교육은 몇 달간 계속되었다. 그간은 관에서 먹여주고 재워줘서 그런대로 지낼 만했다. 월중선이 이따금 면회를 와서 부꾸미를 손에 쥐어주기도 했고, 그믐날은 외출도 나갈 수 있었다.

만덕은 시험을 보면 언제나 1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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