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조선 왕릉 31

조선 왕릉 장릉

조선 제 6대왕 단종의 릉은 강원도 영월에 있다. 1441년 7월 23일에 문종 이향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휘는 홍위(弘暐)이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일직 세상을 떠났기에 12세 되던 해인 1452년 5월 18일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하였다. 그러나 1455년에 일어난 계유정난으로 상왕으로 물러나고, 1457년에 성삼문과 박팽년 등 사육신을 중심으로 일어난 단종복위운동으로 노산군이 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단종은 광나루를 떠나 광주를 거쳐 이포나루, 단강나루로 건넜다. 그 이후는 쉼없이 걸어서 한양을 떠난 지 5일 만에 영월의 청령포에 도착했다. 청령포는 서강이 앞을 막고 뒤로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이 가로막고 있어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단종의 운명은 더욱 어려움에 ..

조선 왕릉 여주 영릉

여주 인터체인지를 나와 37번 국도를 따라 이천 방향으로 4.4KM를 가다보니 영릉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영릉이 나왔다. 이제 세종대왕과의 만남이 시작(始作)된 것이다. 원래 영릉은 남부 서울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서초구 내곡동의 대모산에 있었다. 세종대왕이 항상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의 옆에 있고 싶다고 하여 태종의 묘인 헌릉 옆에다가 모신 것이다. 그러나 묘지의 위치(位置)가 좋지 않다고하여 8대왕인 예종 때에 묘의 이전이 이루어졌다. 예종의 명을 받은 관리들이 터를 잡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아무리 찾아도 좋은 터가 보이지 않아 어느 덧 여주에 칭성산(지금의 영릉이 있는 산)이르렀다. 이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비를 피할 곳을 찾는 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있어 가보니 묘..

조선 왕릉 선조, 목릉

목릉은 구리시 동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선조와 그의 비인 의인왕후 박씨와 계비인 인목왕후 김씨가 함께 모셔진 동원이강릉이다. 이 능역에는 의인왕후 박씨가 처음 모셔졌다. 경릉 자리였다.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경릉에 모시려 하다가 물기가 있고, 불길하다고 하여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선조는 명종이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자, 대왕대비의 명을 받아 1567년 7월 3일에 임금이 되었다. 아버지는 덕흥대원군이며, 어머니는 군부인 정씨이다. 선조는 조선시대 최초로 직계가 아닌 방계에서 임금이 된 첫 번째 임금이다. 선조는 자신이 방계라는 사실에 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노심초사하였다. 그는 아버지 덕흥대원군을 덕종으로 추존하면서 묘를 덕릉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로 선조가 세상을 떠..

조선 왕릉 혜릉

혜릉은 경종의 원비인 단의왕후 심씨의 릉이다. 단의왕후는 1686년 5월 21일 벼슬하지 않고 집에서 학문을 연구한 심호의 딸로 태어났다. 1696년 10세의 나이로 경종왕비가 되면서 심호는 영소전참봉이 되었다. 그러나 1701년 희빈 장씨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들인 경종의 급소를 치는 바람에 장애가 되면서 1718년 2월 7일 장춘헌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사가 없었다. 이제까지 세자빈의 장례를 치루지 않았던 예조에서 숙종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자, 숙종은 문종이 세자로 있을 때 세상을 떠난 현덕왕후에 대한 상례를 조사해 오게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후에 임금이 된 영조는 이라는 책을 만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구릉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혜릉은 세자빈의 신분이기에 원(園)의 기준에 맞추어 만들어졌..

조선 왕릉 경릉

경릉은 제 24대 왕 헌종과 그의 비인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이다. 조선왕릉 중 유일한 삼연릉으로 정자각에서 보면 맨 왼쪽이 헌종이고, 가운데가 효현왕후, 맨 오른쪽이 효정왕후이다. 헌종은 1827년 효명세자(문조로 추존)와 풍양조씨(신정왕후로 추존)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환(奐)이며, 아버지 문조가 21세의 나이로 1830년 5월 6일에 요절하자, 그해 9월 왕세손이 되었다. 1834년 11월 13일에 할아버지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7세의 어린 나이에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7세에 즉위했기에 할머니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여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10세 때인 1837년 3월 18일에 김조근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니 효현왕후 김씨이다. 15세 때에 순원왕후에게 왕권을..

조선 왕릉 현릉

현릉은 조선 제5대 임금인 문종 이향(珦)과 현덕왕후 권씨의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동원이강릉은 같은 영역 안에 있으면서 따로 봉분이 있는 릉이다. 문종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아버지 세종을 닮아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육식을 즐겨하였다. 세종 3년(1421)에 세자가 되어, 서른 여섯에 세종대왕의 뒤를 이어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육식을 많이 한 탓에 재위 2년 4개월만인 1452년 5월 14일, 경복궁 강녕전에서 38세로 승하했다. 문종의 혼인은 사연이 많았다. 문종이 14세 되던 해에 김오문의 딸과 혼인했으나, 문종에 대한 집착과 투기가 강하여 희빈 김씨는 세종대왕에게 쫓겨났다. 이어 맞은 순빈봉씨는 여자 노비인 소쌍을 끌어들여 음란한 짓을 일삼는다는 소문에 ..

조선 왕릉 건원릉2

건원릉 맨 앞에 위치한 금천교이다. 궁궐의 금천교는 왕실과 민가를 분리하는 기준이지만, 왕릉의 금천교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의미이다. 금천교를 지나면 홍살문과 참도, 정자각과 능상(봉분)이 한 줄로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참도 옆 우측에 판위가 있다. 판위는 왕이 제사를 올리려 능에 행차시 능을 바라보며 절을 하는 곳이다. 참도는 두 길로 되어 있다. 좌측 약간 높은 길이 신도(神道)로 릉의 혼령이 걷는 길이다. 우측 약간 낮은 길이 어도(御道)로 제사를 지내로 온 왕이나 제관이 걷는 길이다. 그러므로 조선 왕릉은 영령(英靈)만 모신 공간이 아닌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하며 교감할 수 있는 곳이다. 참도를 따라가면 정자각이 나타난다. 정자각을 오르는 계단은 두 개다. 신도로 이어지는 ..

조선 왕릉 건원릉1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단릉(單陵)이다. 1398년 ‘왕자의 난’을 겪고 난 이성계는 6년 만에 둘째 아들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불편한 마음으로 금강산과 고향인 함흥을 다니다가 1408년 5월 창덕궁 별전 수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건원릉’이라는 능호는 ‘조선을 건국한 왕’이라는 뜻으로, 이후 왕릉은 외자로 지었으나 이성계만큼은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두 자 능호로 지었던 것이다. 공조판서 박자청이 설계․시공한 건원릉은 남송 말기의 중국풍을 따른 고려 공민왕릉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공민왕릉이 5단계의 계단을 만들어 권위를 나타냈으나, 건원릉은 완만하게 능선을 두어 자연미를 살렸다. 초계에는 봉분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봉분은 다른 무덤과 달리 억새로 되어 있다. 이성계는 후비인 신덕왕..

조선 왕릉 영릉

뻥뚫린 영동고속도로를 따라가는 마음은 설레임 자체였다. 우리가 매일같이 만원짜리 지폐에서 만나는 세종대왕을 만난다는 기분에, 그리고 여주는 필자의 본향(本鄕:성씨의 고향)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기자기한 산들로 둘러싸인 용인을 지나면서 넓은 들판이 보였다. 바로 이천이었다. 그러나 이천에 못지않게 넓은 들판을 펼치고 나를 반기는 것은 여주였다. 옛날부터 넓은 들판이 펼치어졌기에 임금님께 진상하는 쌀로 유명한 여주와 이천, 그리고 도자기로 유명한 여주. 주위의 경치(景致)를 감상하며 가속기를 밟다보니 어느덧 여주 인터체인지에 도착하였다. 이제 37번 국도를 따라 이천 방향으로 4.4KM를 가다보니 영릉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영릉이 나왔다. 이제 세종대왕과의 만남이 시작(始作)된 것..

조선왕릉의 조성

우리나라에서 왕이 죽는 것을 훙(薨)한다고 한다. 원래 황제가 죽는 것을 붕(崩)한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사대 정책의 일환으로 붕을 쓰지 않고 훙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왕이 훙하면, 대궐의 지붕에서 피리성을 불어 백성들에게 알리고, 궁중에서는 빈전(殯殿)․국장(國葬)․산릉(山陵)의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장례를 준비하게 된다. 빈전도감은 장례일까지의 염습(殮襲)․성빈(成殯)․성복(成服) 등 빈전에 관한 일을 맡고, 국장도감에서는 장의에 필요한 재궁(梓宮)․거여(車輿)․책보(冊寶)․복완(服玩)․능지(陵誌)․명기(名器)․길흉(吉凶)․의장(儀仗)․포연(鋪筵)․제기(祭器)․제전(祭奠)․반우(返虞) 등의 의식과 절차를 관장했다. 그리고 산릉도감에서는 현궁(玄宮)과 정자각(丁字閣)․비각(飛閣)․재실(齋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