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조선 왕릉

조선 왕릉 혜릉

윤의사 2012. 10. 21. 11:53

혜릉은 경종의 원비인 단의왕후 심씨의 릉이다.

단의왕후는 1686년 5월 21일 벼슬하지 않고 집에서 학문을 연구한 심호의 딸로 태어났다.

1696년 10세의 나이로 경종왕비가 되면서 심호는 영소전참봉이 되었다.

 

그러나 1701년 희빈 장씨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들인 경종의 급소를 치는 바람에 장애가 되면서

1718년 2월 7일 장춘헌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사가 없었다.

이제까지 세자빈의 장례를 치루지 않았던 예조에서 숙종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자,

숙종은 문종이 세자로 있을 때 세상을 떠난 현덕왕후에 대한 상례를 조사해 오게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후에 임금이 된 영조는 <국조상례보편>이라는 책을 만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구릉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혜릉은 세자빈의 신분이기에 원(園)의 기준에 맞추어 만들어졌다.

다른 릉에 비하여 사초지의 경사도 낮으면서 석물도 작다.

 

1720년 숙종의 세상을 떠나고 경종이 즉위하여 왕비로 추봉되면서 혜릉이라는 릉호가 내려졌다.

이때 난간석을 만들고 무인석을 세웠다.

 

세자빈으로 있다가 왕비로 추봉되는 것은 먼저 지아비가 왕으로 즉위해야 하고, 친정의 힘이 있어야 했다. 단의왕후의 친정은 청송 심씨이다.

청송 심씨는 조선시대 38명(추봉한 왕비를 포함)의 왕비 중에서 3명을 배출하였다.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를 비롯하여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와 단의왕후이다.

심온이 태종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지만 꿋꿋하게 버티면서 조선왕조를 이끈 한 집안이 되었다.

비록 왕후의 릉이 되었지만 지아비와는 함께 하지 못했다.

경종은 계비인 선의왕후 어씨와 함께 성북구의 의릉에  잠들어있기 때문이다.

혜릉이 지아비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혜릉 표지석

 

 

홍살문에서 바라본 혜릉 전경, 세자빈의 원으로 조성되어 사초지도 낮고 석물도 단촐하다.

 

 

혜릉의 전경

 

 

혜릉의 신도비

 

 

혜릉의 쓸슬함만큼 전쟁의 피해를 많이 보았다. 전쟁에 불타버린 수복방터

 

 

정자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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