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조선 왕릉

조선 왕릉 현릉

윤의사 2012. 9. 29. 12:53

현릉은 조선 제5대 임금인 문종 이향(珦)과 현덕왕후 권씨의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동원이강릉은 같은 영역 안에 있으면서 따로 봉분이 있는 릉이다.

 

문종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아버지 세종을 닮아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육식을 즐겨하였다.

세종 3년(1421)에 세자가 되어, 서른 여섯에 세종대왕의 뒤를 이어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육식을 많이 한 탓에 재위 2년 4개월만인 1452년 5월 14일,

경복궁 강녕전에서 38세로 승하했다.

 

문종의 혼인은 사연이 많았다.

문종이 14세 되던 해에 김오문의 딸과 혼인했으나,

문종에 대한 집착과 투기가 강하여 희빈 김씨는 세종대왕에게 쫓겨났다.

이어 맞은 순빈봉씨는 여자 노비인 소쌍을 끌어들여 음란한 짓을 일삼는다는 소문에 의해

역시 세종대왕에 의해 쫓겨났다.

그리고 맞아들인 현덕왕후 권씨는 권전의 딸로 14세에 세자의 후궁이 되었다가,

19세에 세자빈이 되었다.

하지만 1441년 7월 23일에 단종을 생산하고 경복궁 자선당에서 세상을 떠나

시흥 군자면에 안장되었다..

그 후 문종은 혼인을 하지 않고 세자빈 권씨를 현덕왕후로 추존하면서

소릉이 되었다.

 

문종도 승하한 후 태종과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대모산에 안장하려 했으나,

물이 나와 현재의 동구릉에 묻히게 되었다.

 

사육신에 의한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고 고문에 의해 성삼문이 단종복위계획을 현덕왕후의 친정식구들이 알고 있다고 실토하면서 친정어머니 최아지와 동생 권자신이 죽음을 당하였다. 종묘에서 위패도 축출한 세조는 소릉도 없애면서 유해를 군자 앞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세조의 장자인 의경세자나 예종이 20세에 세상을 떠나자,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이 ‘현덕왕후의 저주’라 떠들었다.

그리하여 성종 때 복위시키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세조의 실정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어 이루지 못하였다.

중종 8년(1513)에 종묘에 벼락이 떨어지자,

“홀로 제사를 받는 문종의 뜻‘이 아닌가 하여

현덕왕후를 복위하고 현재의 위치에 천장했다.

 

현릉은 세종 때 완성된 <국조오례의>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 릉이다.

현릉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권역에 있다.

다른 릉과 같이 금천교를 거쳐 신도와 어도,

그리고 정자각, 사초지, 능침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현릉의 문무인석은 과장된 아주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현릉에 들어서는 금천교

 

 

신성 구역을 나타내는 홍살문

 

 

산릉을 찾은 임금이 네 번 절하는 판위, 참도가 원래 릉이 만들어졌던 문종 능침으로 ㄱ자로 꺽여 있다.

 

 

문종과 현덕왕후 신도비

 

 

신계와 동계가 함께 있는 정자각, 정자각 뒤에는 혼령이 나가는 문과 사초지로 올라서게 하는 다리가 있다.

 

 

문종의 능침

 

 

현덕왕후의 능침, 병풍석이 없다.

 

 

문종 능침 앞의 문신상

 

 

 

문종 능침 앞의 무인상

 

 

현덕왕후 능침 앞의 문신상

 

현덕왕후 능침 앞의 무인상, 근엄함 대신에 입가에 웃음을 띤 익살스런 모습이다.

 

'보고 배우는 문화유산 > 조선 왕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왕릉 혜릉  (0) 2012.10.21
조선 왕릉 경릉  (0) 2012.10.13
조선 왕릉 건원릉2  (0) 2012.09.26
조선 왕릉 건원릉1  (0) 2012.09.23
조선 왕릉 영릉  (0) 201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