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조선 왕릉

조선 왕릉 건원릉1

윤의사 2012. 9. 23. 12:04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단릉(單陵)이다. 1398년 ‘왕자의 난’을 겪고 난 이성계는 6년 만에 둘째 아들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불편한 마음으로 금강산과 고향인 함흥을 다니다가 1408년 5월 창덕궁 별전 수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건원릉’이라는 능호는 ‘조선을 건국한 왕’이라는 뜻으로, 이후 왕릉은 외자로 지었으나 이성계만큼은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두 자 능호로 지었던 것이다.

 

공조판서 박자청이 설계․시공한 건원릉은 남송 말기의 중국풍을 따른 고려 공민왕릉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공민왕릉이 5단계의 계단을 만들어 권위를 나타냈으나, 건원릉은 완만하게 능선을 두어 자연미를 살렸다.

 

초계에는 봉분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봉분은 다른 무덤과 달리 억새로 되어 있다. 이성계는 후비인 신덕왕후 곁에 묻히고 싶었으나, 태종이 계모인 신덕왕후 곁에 묻어두지 않을 것을 예상하여 함흥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이방원은 고려를 부흥시키려는 세력을 두려워하여 이성계를 한양과 가까운 이곳에 릉을 만들고, 함흥에서 고향흙과 억새를 가져다 봉분을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릉과는 달리 건원릉은 1년에 한번만 릉을 다듬고 있다.

웅장한 봉분은 병풍석으로 감싸 있다. 12면의 병풍석은 구름을 탄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이성계를 지키고 있다. 릉 주위에는 석호와 석양이 호위하고 있다.

릉의 중계에는 망주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귀신 얼굴이 조각된 다섯 개의 받침돌 위에 혼유석이 있다. 릉의 좌우에는 말과 함께 문신석이 있고, 중앙에는 장명등이 있다. 장명등은 불교의 부도탑에서 유래되었다. 앞서 만든 제릉과 정릉의 장명등은 4각이지만, 건원릉은 숭유억불책을 쓴 태종이 만들었기에 8각으로 만들었다.

릉의 하계에는 무인석과 말이 있다. 건원릉에서는 헌릉 이외의 다른 릉에서 볼 수 없는 릉의 중앙에 배석이 자리하고 있다. 태종이 세상을 떠난 이성계와 대화하며 넋두리를 하던 자리이다.

 

 

잉에서 바라본 봉분, 갈대가 자라고 있다.

 

 

건원릉 전경, 혼유석까지가 초계, 장명등이 있는 곳이 중계, 그 아래 부분이 하계이다.

 

 

건원릉의 곡장

 

 

병풍석의 구름을 타고 있는 12지신상

 

 

엉덩이가 귀여운 석양

 

 

망주석의 모습

 

8각 장명등

 

 

귀신 얼굴이 받침돌로 고인 혼유석

 

 

말을 대동한 문신석

 

 

칼을 든 무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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