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왕이 죽는 것을 훙(薨)한다고 한다. 원래 황제가 죽는 것을 붕(崩)한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사대 정책의 일환으로 붕을 쓰지 않고 훙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왕이 훙하면, 대궐의 지붕에서 피리성을 불어 백성들에게 알리고, 궁중에서는 빈전(殯殿)․국장(國葬)․산릉(山陵)의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장례를 준비하게 된다.
빈전도감은 장례일까지의 염습(殮襲)․성빈(成殯)․성복(成服) 등 빈전에 관한 일을 맡고, 국장도감에서는 장의에 필요한 재궁(梓宮)․거여(車輿)․책보(冊寶)․복완(服玩)․능지(陵誌)․명기(名器)․길흉(吉凶)․의장(儀仗)․포연(鋪筵)․제기(祭器)․제전(祭奠)․반우(返虞) 등의 의식과 절차를 관장했다. 그리고 산릉도감에서는 현궁(玄宮)과 정자각(丁字閣)․비각(飛閣)․재실(齋室) 등 봉분 조성과 부대 시설에 관한 일을 맡았다.
그럼 이처럼 오랜 동안의 왕의 시신(屍身)을 어떻게 했을까?
시신은 오랜 기간이 경과하면 부패하게 마련이다. 당시에는 방부제가 따로 없었으므로 대체로 빈전을 따로 설치하여 왕의 시신을 입관시킨 뒤 빈전 안에다 가매장을 하거나, 석빙고에서 얼음을 가져다가 동결시켰다. 그리고 빈전 안에서는 선왕의 가까운 왕족이 지키며 문상을 받았는데, 선왕을 모셨던 궁녀가 밖에서 함께 지키며 심부름을 하였다. 왕은 왕비와 함께 조석으로 상식(上食)을 올리면서 곡(哭)을 하였다.
택지는 상지관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하고, 왕이 친히 나아가 지세를 관망하기도 했다. 명당에 유택을 정하는데, 그 중에서도 지맥이 닿아 생기가 집중되는 혈(穴)에 관을 묻고 봉분을 조성했다.
능은 좌향으로 하고 능의 뒤쪽에는 산이 있고, 송림(松林)을 배경으로 하여 동․서․북 삼면으로 곡장(曲墻)을 두르고 곡장 안에 봉분을 만들었다.
봉분 아랫 부분은 12방위를 담당하는 십이지신상을 해당 방위에 맞게 양각한 병풍석을 둘렀다. 이는 모든 방위의 외침으로부터 왕릉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병풍석이 감싸는 봉분의 주위는 세 부분으로 된 난간석이 보호를 하였고, 난간석 바깥쪽으로는 석호(石虎) 네 기와 석양(石羊) 네 기가 밖을 향하여 봉분을 호위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석호는 능을 지키는 수호신이고, 석양은 사악한 것을 피하고 명복을 비는 뜻을 담고 있다.
봉분 바로 앞에는 상석(床石)이 있고, 상석 아래에는 귀면(鬼面) 모양을 새긴 고석(鼓石)이 상석을 받치고 있다. 귀면은 몹시 사악한 것을 경계하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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