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김종수의 역사이야기

자세히 들여다 본 익산 미륵사지 석탑

윤의사 2018. 6. 27. 08:36

 
다시 복구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려고 익산에 갔다.
가설 덧집 속으로 들어가 석탑 안을 들여다 보았다.

미륵사지 석탑은 2개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最古의 석탑이다. 현존 석탑 중 가장 오래된
석탑이란 뜻이다. 사리장엄구 봉영기에서 확인된 건립연대는
서기 639. 백제 30대 무왕이 죽기 2년 전이다.
경주 분황사 건립연대가 634년인데 탑이 동시에 건립되었다
는 증거가 없고 모전 석탑이기 때문에 미륵사지 석탑의 최고 오래된 석탑이란 타이틀은 아직 유효하다.
다른 하나는 最大 석탑이란 타이틀이다. 6층 높이 14.5미터.
미륵사지 석탑이 건립 당시 몇층이었는지 알 수 없다. 기단부
규모와 옥개석의 체감율 등으로 미루어 볼 때 9층 또는 7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탑은 1992년에 9층으로 복원됐다.

석탑 기단부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말은 목탑 형식을 본떳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목탑만이
속이 비어 사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법륭사
5중목탑은 안으로 들어가 윗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이다.

석탑 해체 시 기단부 심초석에서 사리장엄구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사리장엄구는 목탑은 탑 기단부 지하에 봉헌한다.
그것은 목탑 자체에 구멍을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탑은 지하가 아닌 기단부나 옥개석 부분에 사리를
봉헌한다. 지하에 둘 경우 습기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이다. 사리 봉헌 위치는 후대로 갈수록 위로 올라간다. 8세기에
건립된 석가탑은 기단 위 3층 옥개석에서 사리가 발견되었다.

아래 첫번째 돌에 사리가 봉헌돼 있었다. 사리는 복구시 원래
있던 사리공에 다시 넣어 봉헌했다. 건립당시 백제 무왕과
왕비는 탑 안으로 들어와 사리를 경배했을 것이다. 지금으로
부터 1379년 전 무왕과 왕비를 상상하면서 사리 봉헌한 돌을
만져 보았다. 그 당시 기운이 돌의 질감을 통해 전해지는 듯
했다.

사리 13과가 들어 있었던 사리함 내호와 외호이다. 이번에 보물
로 지정되었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작아 보였다. 불상에는 복장
유물로 경전을 넣지만 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헌하니 불자
들 입장에서는 법당보다 탑이 더 숭배되었을 것이다.

봉영기는 사리 봉헌의 이유가 적혀있는데 작은 금판에 각서
하였고 백제 왕비 사택적덕의 딸 사택왕후가 발원하여 건립한
것으로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동 무왕의 왕비가 선화공주
가 아니었다.

동탑은 9층으로 복원되었다. 상상복원으로 졸속복원이란 비판
을 받고 있다. 그런데 기단부 발굴결과 상층부 옥개석이 발견
되어 동탑은 9층이었을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그럼
미륵사에는 좌우에 석탑 2기와 중앙에 목탑 1기가 세워졌는데
탑의 높이는 다 달랐을까? 같았을까? 목탑은 메인으로 9층이
었을 것으로 판단되나 양 석탑은 단정할 수 없다.

동탑은 구부재를 5% 정도 밖에 쓰지 않고 신부재를 썼다.

석탑 네 귀퉁이에 있는 석인상인데 가장 원형이 잘 남아있는
석인상이다.

동탑지에서 출토된 탑 처마에 달렸던 풍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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