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류성룡

임진왜란3

윤의사 2015. 3. 6. 20:01

류성룡은 이일이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왜적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보니 하는 수 없이 이일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류성룡은 이일을 떠나보낸 후 신립을 불렀다. 신립은 명종 22년(1567)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도총부도사·경력·진주판관 등을 지냈다. 선조 16년(1583) 온성부사로 있을 때 두만강 방면의 여진족 추장인 니탕개가 쳐들어왔다. 원래 조선에 순종하니 선조는 벼슬을 주고 대우하였다. 그러나 벼슬에 불만을 품고 여진족을 모아 경원부로 침입, 아산보와 안원보를 점령했다. 이에 신립은 첨사 신상절과 함께 기병 500여 명을 동원하여 여진족 1만여 명을 물리쳤다. 이 공으로 1584년 함경도북병사에 오르고 환도와 수은갑두구 등을 받았다. 1588년 고미포의 여진족 부락을 공격하여 승리하는 등 여진족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조선 제일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립이 이끌고 갈 군사가 없었다. 이일이 모두 이끌고 갔기 때문이었다. 류성룡은 신립에게 군사를 모집하도록 했다. 신립은 군사를 모으려고 백성들에게 방을 붙였다. 하지만 백성들은 군사로 모이지 않았다. 류성룡은 애가 탔다. 하는 수 없이 류성룡이 나섰다.

“왜군이 쳐들어왔소. 이대로 있다간 모두 죽을 수도 있소. 우리 가족을 위하여 싸워야 합니다.”

류성룡의 외침에 백성들이 모였다.

신립이 자신이 군사를 모을 때에는 호응하지 않던 백성들이 류성룡의 말에 만 명 가까이 모인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되었다.

“저런 얼굴로 군사를 이끈다면 아마 싸워도 질 것이다. 신립의 공으로 모든 것을 돌려야 기분이 좋아 백성들을 잘 이끌 것이야.”

혼잣말을 한 류성룡이 신립과 함께 선조가 있는 근정전으로 갔다.

“전하, 신립장군의 공으로 만 명의 군사가 모였습니다.”

만 명의 군사를 모았다는 말에 선조는 크게 기뻐하였다.

“신립을 삼도순변사로 임명하노라. 그리고 이 보검도 함께 내리노라.”

삼도순변사는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의 군사를 담당하는 관리이다. 더구나 보검을 준 것은 임금의 허락없이도 어떤 일이든 처리할 수 있다는 막강한 힘을 준 것이다. 신립은 종사관 김여물 등의 군관과 함께 모집한 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경상도로 향했다.

그러나 군사로 모인 백성들이 술렁거렸다.

“나는 류성룡대감을 모시려고 왔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군사들은 하나, 둘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루에 많으면 100명씩 도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 왜군에게 패배한 이일이 신립에게 왔다.

“장군, 아무래도 왜군을 막기 위해서는 문경새재에 진을 쳐야만 합니다. 문경새재에서는 한 명이 백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일의 말에 신립은 반대했다.

“이장군은 모르는 소리요. 지금 모인 군사들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농민들이오. 그들을 훈련도 시키고 도망을 치지 못하게 하려면 배수의 진을 쳐야만 합니다.”

신립은 이일의 작전을 물리쳤다. 이때 농민이 신립을 찾았다.

“장군, 왜군이 지금 이곳에서 6,7리 떨어진 단월역가지 왔습니다. 어서 대비를 하겨야 하옵니다.”

“이 놈은 백성과 군사들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놈이다. 어서 목을 쳐라.”

그리고 신립은 농민들을 데리고 진을 치는 훈련을 하였다. 훈련을 시작한 지 한 시가 지났을 때였다.

“탕!탕!탕!”

시끄럽게 조총소리가 들리며 훈련을 하던 병사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왜군의 기습에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기병들은 앞장서서 왜군을 막아라!”

신립의 명령이 내려질 무렵,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진흙으로 된 강바닥은 금방 질퍽질퍽한 논바닥으로 변했다. 신립이 자랑하던 500명의 기병들은 말이 강바닥에 박히면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왜군들은 꼼짝 못하는 조선 기병들을 공격하니 급하게 모인 병사들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신립은 왜군에 쫓기다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탄금대 기념비

 

탄금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이일과 신립이 패하면서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들은 가는 곳마다 닥치는 대로 집을 불사르고 백성들을 죽였으며 재산을 빼앗았다. 백성들은 고향을 버리고 피난길에 나섰다. 급기야 선조도 관리들을 불렀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어서 말들을 해보시오.”

선조는 답답하다는 듯 관리들에게 물었다. 관리들은 모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서 평양으로 가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러하옵니다. 그리고 왜군의 기세가 더 커지면 의주로 가셨다가 명나라로 가시는 것이...”

관리는 말을 잇지를 못했다. 선조는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종묘사직을 버린다면 짐이 죽어 선대 왕들을 어찌 볼 수 있겠소?”

그러나 선조의 마음은 이미 굳어져 있었다. 사실 선조는 의주로 갈 생각을 먹고 관리들에게 형식적으로 물어본 것뿐이었다.

4월 29일 새벽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전하, 우리를 버리고 떠나시면 어떡합니까?”

“전하, 2백년 서울을 버리시면 아니되옵니다.”

“전하!”

백성들은 북으로 피난가는 선조와 관리들을 향해 통곡을 하며 말했다. 선조도 가슴이 아팠다.

“진작 이이의 말을 들었을 것을?”

그러나 후회해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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