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류성룡

임진왜란2

윤의사 2015. 2. 7. 18:42

부산과 동래를 점령한 왜군은 3개 부대로 나누어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1군은 고니시유기나가가, 2군은 가토오기요마사가, 3군은 구로다나가마사가 맡았습니다. 왜군이 서울로 향했다는 소식에 선조는 류성룡을 급히 찾았습니다.

“그대를 왜구의 침입을 막는 일을 총지휘하는 도체찰사로 임명하겠소. 그러니 어서 왜군을 막을 대책을 강구하시오.”

1592년(선조 25년)에 류성룡은 도체찰사가 된 것이었습니다. 류성룡은 사양을 하였습니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는 글을 주로 공부하였으므로 군사의 일을 맡는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옵니다. 더구나 지금까지 문관이 군사의 일을 보는 경우는 없었사옵니다."

그러자 선조는 간청을 하였습니다.

“옛날의 예는 말할 것이 못 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200년간 평화로운 시기로 말미암아 군사 정책을 게을리 해왔다가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가 이처럼 위기를 맞고 있소. 지금 군사의 일을 맡을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대가 좋은 지혜를 내서 군사를 모아 왜구를 무찌르는 강한 나라를 키워주기를 바랍니다.?

어쩔 수 없이 류성룡은 도체찰사에 취임하였습니다. 류성룡은 가장 훌륭한 장군으로 평가받는 이일에게 군사를 주어 왜적을 막게 하였습니다. 사실 류성룡은 이일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류성룡과 가까웠던 이순신을 모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순신이 함경도 조산보 만호로 일하며 녹둔도의 둔전관도 겸할 때였습니다. 녹둔도는 두만강 어귀에 있는 조그만 섬으로 군사가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함경도 감사인 정언신이 나라에 건의하여 녹둔도에 둔전(군대의 식량과 관청의 경비에 쓰도록 지급된 땅)을 만들게 하였고 나라에서는 백성을 섬으로 보내어 땅을 일구고 군사들과 더불어 농사를 짓게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둔전관이란 둔전을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순신은 백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여진족의 침입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애써 백성들이 지어놓은 곡식을 여진족이 쳐들어와 언제 약탈할지 몰라 하였던 것입니다. 이순신은 여진족에 대한 걱정을 하는 백성들을 보니 군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라에 건의하여 군사를 더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이순신은 함경도 병마절도사인 이일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영감

지금 녹둔도는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여진족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군사로 여진족을 막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은 군사가 필요하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순신’

 

그러나 순신의 편지를 받은 함경도 병마절도사 이일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 곳이 뭐 중요하다고 군사가 더 필요하냐?"

이일은 코웃음을 치며 술을 마시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한편 이순신은 추수에 바쁜 백성들을 돕기 위해 두만강가를 지키는 적은 군사들을 빼놓고는 모두 농사일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하루빨리 농사일을 마무리해야 여진족을 함께 막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순신이 농민과 함께 추수일에 한창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풍년가를 부르며 흥에 겨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농민들의 일을 돌보면서도 한편으로는 항상 여진족이 언제 침입할까 전전긍긍하였습니다. 이때 한 병사가 헐레벌떡 이순신에게 왔습니다.

"나리, 큰 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여진족이, 여진족이!"

"여진족이 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이순신은 군사들과 농민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어서 낫을 버리고 칼과 활을 들거라. 지금 여진족이 쳐들어왔단다."

이순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하는 들판 바로 옆에 칼과 활을 준비시켜 놓으며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였습니다. 가장 빠른 병사들을 말에 태워 앞장 세우고 이순신은 군사들을 이끌고 여진족이 쳐들어왔다는 지역으로 갔습니다. 이미 여진족이 휩쓸고 간 곳은 모든 곡식을 약탈당하였습니다. 겨우 살아있던 병사가 이순신을 보고 말했습니다.

"나리, 지금 우리 군사와 백성들을 끌고 저쪽으로 갔습니다."

이순신은 병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군사를 몰고 갔습니다. 정신없이 자신의 진지로 돌아가는 여진족을 향해 순신은 일제히 화살을 겨누었습니다. 이순신도 화살을 여진족을 향해 쐈습니다.

"휘익!"

화살이 발사되자, 말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말에 탄 사람이 땅에 꼬꾸라졌습니다. 이순신의 화살은 말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한 말에 탄 사람에게 향했습니다. 그는 바로 여진족의 추장이었습니다. 추장이 죽자 여진족들은 혼비백산하여 더 빨리 도망을 쳤습니다. 여진족을 따라 붙은 이순신과 조산보 군사들은 닥치는 대로 여진족을 사로잡거나 칼로 찔렀습니다. 그러나 조산보의 군사가 적어 더 이상 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순신은 녹둔도에서 잡혀간 조선 사람 포로들을 구하면서 쫓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비록 많은 수의 조산보 병사가 죽거나 다쳤지만 이순신이 당황하지 않고 여진족을 맞아 싸웠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경도 병마절도사 이일이 이순신의 뜻대로 군사들을 더많이 지원했다면 여진족을 완전히 쫓아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려 이순신은 아쉬웠습니다. 녹둔도에서 여진족과의 싸움에서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은 함경도 병마절도사인 이일에게도 알려졌습니다.

"뭣이라고, 녹둔도가 당했다고?"

이일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순신이라는 놈이 거만하기만 하더니 결국 이런 꼴을 당했구나. 당장 이순신을 잡아들이거라."

이일의 명령에 이순신은 이일의 앞에 잡혀왔습니다.

"너는 어찌 적을 제대로 막지 못했느냐?"

이순신은 이일을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제대로 막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군사가 지금보다 많았다면 우리가 완전히 여진족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저 놈이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모양이로구나?"

이일의 말에 이순신이 말했습니다.

"영감, 내가 전에 우리 조산보에 병사가 필요하다고 여러 번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내가 영감께 올린 글이 아직도 내게 있습니다. 만일 이일을 나라에서 아신다면 영감을 죄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의 말에 이일은 부르르 떨었습니다.

"당장 저 자를 감옥에 가두거라."

이일은 명령을 내리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다음 날 이일은 녹둔도의 전투 상황 보고서를 나라에 올렸습니다. 물론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순신이 싸움을 잘못하여 우리나라만 많은 피해를 보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일의 보고서를 받은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함경도 병마절도사인 이일의 보고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나 그 동안 이순신이 세운 공적과 인간성을 생각해 본다면 이순신에게 함부로 죄를 주기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만큼 나라에는 장수가 귀했고 이순신이 뛰어난 인재임은 분명했습니다.

결국 나라에서는 이순신에게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백의종군이란 나라에서 내린 벼슬을 내놓고 일반 백성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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