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 6대왕 단종의 릉은 강원도 영월에 있다.
1441년 7월 23일에 문종 이향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휘는 홍위(弘暐)이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일직 세상을 떠났기에 12세 되던 해인
1452년 5월 18일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하였다.
그러나 1455년에 일어난 계유정난으로 상왕으로 물러나고,
1457년에 성삼문과 박팽년 등 사육신을 중심으로 일어난 단종복위운동으로
노산군이 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단종은 광나루를 떠나 광주를 거쳐 이포나루, 단강나루로 건넜다.
그 이후는 쉼없이 걸어서 한양을 떠난 지 5일 만에 영월의 청령포에 도착했다.
청령포는 서강이 앞을 막고 뒤로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이 가로막고 있어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단종의 운명은 더욱 어려움에 빠졌다.
바로 삼촌인 금성대군이 순흥(오늘날 영주)에서 단종복위운동을 꾀하다가
여종의 고발로 발각되었다.
이에 노산군에서 평민으로 다시 강등되고, 금성대군은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이때 청령포가 홍수로 침수되자, 영월관아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잠시 옮겼다.
관풍헌으로 옮겨온 지 얼마 안되어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가지고 왔다.
왕방연이 단종을 보고 자신의 임무를 말하지 못하자,
노산군을 돌보던 관리가 자청하여 활줄에 긴 줄을 이어 노산군 목에 걸고 문 밖에서 잡아당겨
노산군은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강물에 버려졌고, ‘죄인의 시신에 손을 댄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명령에
백성들은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나 영월호장인 엄홍도가 밤에 목숨을 걸고 노산군의 시신을 땅에 묻고 영월을 떠났다.
200년 후에 노산군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예언대로,
숙종 24년(1698)에 노산군은 단종으로 추복되고, 단종묘는 장릉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엄흥도가 밤에 몰래 만든 무덤이다보니 조선 왕릉의 형식과는 동떨어졌고 석물도 단조롭다.
정자각에서는 능침이 보이지 않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다.
무인석은 보이지 않고 문인석만이 장릉을 지키고 있다.
문인석이 지키는 장릉
능선을 따라 펼쳐진 장릉
청령포 나루터
단종의 슬픈 모습을 보고 들었다는 관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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