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창경궁

창경궁 문정전

윤의사 2011. 11. 14. 14:55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임금이 신하들과 회의를 열고 의견을 나누던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동향인 명정전과 달리 남향 건물이다.

아버지 영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도세자(후에 장조로 추존)가 세상을 떠나면서

혼전으로 쓰인 이후, 왕실의 신주를 모신 혼전으로도 자주 쓰였다.

문정전 일원은 일제에 의해 창경원으로 격하되면서 훼손되었고

1986년에 건물은 다시 세웠으나,

서쪽에 있던 담장과 화계 정원은 아직 재건하지 않았다.


문정전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도세자 선은 영조가 40세가 넘어 얻은 자식이다.

2세 때 세자가 되었으며, 10세 때에 혼인하였다.


영리하고 글재주가 뛰어나,

3세 때에 <효경>을, 7세 때에 <동몽선습>을 뗄 정도였으며

시를 지어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10세 때는 부왕인 영조의 왕세제추대와 관련해 일어난 신임사화에 대해

노론의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사도세자가 노론에 대해 비판적이자

그를 싫어하는 노론들과

이에 동조하는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이

영조에게 사도세자를 모함하였다.

1761년에 정순왕후의 아비인 김한구와

그 일파인 홍계희·윤급 등의 사주로

나경언이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상소하였다.

영조는 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를 휘령전(후에 문정전으로 바뀜)으로 불러 자결을 명하였다.

하지만 세자가 끝내 자결을 하지 않았다.

영조는 그를 평민으로 강등하고 뒤주 속에 가두니,

한 여름의 더위와 굶주림으로 8일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사도세자는 아들인 정조에 의해 장조로 추존되고,

경기도 화성에 있는 융릉에 묻히게 되었다.

아직도 사도세자의 혼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문정전

화계정원터, 가을 단풍이 짙다

명정전과 문정전을 잇는 통로

사도세자의 원찰인 화성의 용주사, 오른쪽에 있는 나무가 수령 200년이 넘는 회양목이다

'보고 배우는 문화유산 > 창경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경궁 통명전  (0) 2011.11.24
창경궁 함인정  (0) 2011.11.21
창경궁 숭문당  (0) 2011.11.18
창경궁 명정전  (0) 2011.11.10
창경궁  (0) 201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