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창경궁

창경궁

윤의사 2011. 11. 7. 08:55

 

지금 40-50대의 어른들에게 놀이 공원 하면 창경원이 떠오를 것이다.

창경원은 창경궁이 일제의 침략에 의해

공원으로 격하된 곳이다.

아마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창경궁에서 벚꽃 놀이도 하고

술판을 벌이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창경원으로 격하된 창경궁은

1983년 12월 30일에 궁궐로 환원되었다.

창경궁은 법궁인 경복궁과 보조 궁궐인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조선시대 궁궐이다.

창경궁 터에는 원래 수강궁이 있었다.

수강궁은 1418년에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궁이다.

시간이 흐르며 왕실 가족이 늘어나 창덕궁의 공간이 좁아졌다.

이에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창덕궁과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마련한 궁궐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을 구성하고 있다.


창경궁에는 아담한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지형을 따라 전각을 지어

전각 사이의 공간이 좀더 여유로운 편이다.

창경궁의 또 다른 특징은

남향으로 자리잡은 다른 궁궐과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점이다.


원래 왕실 가족들이 생활하기 위해 지어진 궁궐이기에

임금이 정무를 보던 내전보다 외전이 더 넓은 것도

창경궁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왕실 가족들의 공간이다보니

왕실 가족간에 얽힌 일화가 많이 전해온다.

 

홍화문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은 보물 제 384호로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은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장대석으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2층 누각으로 이루어져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선 임금과 백성이 만나기도 하였다.

영조가 군역을 개혁한 균역법을 실시하기 전

백성들에게 찬반을 물었으며,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만백성과 함께 축하하기 위해

백성에게 손수 쌀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옥천교


창경궁의 정문인 흥화문과 정전인 명정문 사이에 흐르는

금천에 놓여진 다리가 옥천교이다.

보물 제 386호로 지정되어 있다.

궁궐 앞마당에 흐르는 시냇물은 배산임수의 성격이 강하다.

창경궁을 길지로 하기 위해

창경궁의 뒤쪽과 짝을 이루어

앞쪽에 일부러 물이 흐르는 시내를 만든 것이다.

궁궐의 외부와 법전을 차단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주말을 맞아 단풍 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한 홍화문 앞

 

두 개의 홍예로 이루어져 아름다운 옥천교

 

남쪽에서 바라본 옥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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