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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영어몰입교육을...

윤의사 2011. 3. 17. 20:40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계의 주된 화두로 떠오른 것이 바로 영어 몰입교육이다.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고 학생들도 영어로 대답한다는 것이다.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한 찬반이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외국어 몰입 교육이 벌써 조선시대에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 필요했던 외국어는 중국어, 몽골어, 여진어, 일본어, 위구르어, 유구어(琉球語·오키나와)의 여섯 개였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사역원(司譯院)이었는데,

고려 때 설치된 통문관(通文館)이 전신이었다.

사역원의 관사(官舍)는 종로구 적선동에 있었는데,

본원 외에 한학전함청(漢學前銜廳), 몽학청(蒙學廳), 왜학청, 청학청(淸學廳) 등 30여개 관서가 있어서 전문 외국어 학교였다.

이곳에는 대개 중인들이 많이 지원하였으나,

지원자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였다.

더구나 역관이라도 되면 사무역을 통하여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므로 지원자가 많았던 것이다.

사역원의 입학 조건은 까다로웠다.

지원자가 사조단자(四祖單子·부·조부·증조부·외조부의 명단)와

참상관 이상 2인과 교회(敎誨·사역원 관리) 1인의 신원보증서를 제출하면 15인 심사했다.

사역원의 연혁 및 중국,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조선 숙종 때 역관 김지남과 아들 경문이 지은 『통문관지』에 '항통(缸筒·비밀투표함)을 넘어뜨려 3매듭(結) 이상이면 입속(入屬)을 거부한다'고 전하니, 곧 3명 이상이 반대하면 입학이 거부되었다는 뜻이다.

사역원에 입학하면 고난의 길이었다.

사역원 안에서의 강의는 물론 학생들끼리의 모든 대화도 외국어로만 가능했으며, 자주 원시(院試)와 고강시(考講試)를 치루어야만 했다.

원시는 각 중월(仲月·2·5·8·11월)과 계월(季月·3·6·9·12월)에 두 사람이 자신이 배우는 외국어로 대화하고 강의를 해야만 하였다.

고강시는 계절이 시작되는 첫 달 초하루에 외국어 교재를 보지 않고 외워야 하는 배강(背講)과 ‘사서(四書)' '춘추(春秋)’를 책을 보면서 풀이를 하는 임강(臨講)을 해야만 했다.

고강시를 통과해야만 외무고시인 취재시(取才試)와 역과시(譯科試)에 응시하는데, 역과는 회화, 강독, 사자(寫字·작문), 번역의 4종류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