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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변은 매화꽃

윤의사 2011. 3. 22. 07:44

조선시대의 왕은 이동식 변기에 대변을 보았는데,

이 변기를 ‘매화(梅花)틀’ 또는 ‘매우틀’이라 불렀다.

이 매화틀은 의자식으로, 오늘날 어린 아기의 좌변기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e'자 모양에 높이는 30센티미터 정도이고,

빨간 우단으로 나무틀 위를 쌌으며,

나무틀 밑에 구리 그릇을 놓아 거기에 대변을 받았다.


왕은 대변을 본 뒤에 뒤처리를 비단으로 하였다고 하나,

우리나라 왕실은 생활이 검소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는 잘못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오히려 벼슬아치 집에서 몇 배 더 사치를 하여 나라에서 금하기도 하였다.


궁중에는 매화틀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복이 나인이 있어,

미리 매추(볏짚이나 풀을 잘게 썬 것)를 매화틀 속에 뿌려서

왕에게 가져갔다.

왕이 그 위에 일을 보고 나면,

측근 나인이 이를 왕실 전용 병원인 전의감(典醫監)에 보냈다.

그러면 전의(典醫)는 왕의 대변 상태,

즉 변의 농도와 색깔 등을 살피고 심지어 맛까지 보면서

왕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왕의 매화틀은 모두 세 개가 있었고, 왕비나 왕대비는 두 개씩 사용했다.

1917년 11월 창덕궁의 대조전(大造殿)에 불이 나서 다시 재건할 때

신식 세면실과 목욕실을 설치하자 매화틀은 밤에만 쓰이게 되었다.

화장실을 궁중어로 ‘측간(廁間)’ ‘급한 데’ ‘부정(不淨)한 데’ 또는 ‘작은집’이라 했는데, 궁인들이 쓰는 화장실은 멀리 떨어져 있어 모여서 함께 가곤 했다고 한다.

을미개혁(1895) 이후 단발령이 실시될 대 궁인들이 밤에 측간에 갔다가 머리를 잘리고 오는 일이 생기자 측간을 ‘도깨비 소행’이라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