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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한국 땅

윤의사 2011. 3. 31. 08:05

어제 일본이 독도(獨島)를 자기네 땅이라고 서술한 교과서가 발표되었다.

울릉도(鬱陵島)의 동남쪽 방향 87킬로미터 가량의 바다에 있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인 독도는

신라의 지증왕이래 우리나라의 영토가 되었던 땅이었다.


일본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1905년 무인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는 명문 조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00년에 강원도의 27번째 郡으로 지방관제(地方官制)에 편입시킴으로써

일본이 주장하는 시기보다도 앞서 우리 영토로 명문화 하였다.


독도뿐만 아니라 대마도도 우리나라의 땅이라고 우리 조상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삼국사기』와 대마도사를 매일 매일 기록한 『대주편년략(對州編年略)』 등에는 신라가 지배한 사실을 밝히는 등 대마도가 신라의 영향권 안에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시대 어숙권(魚叔權)이 지은 『패관잡기(稗官雜記)』에 보면

‘대마도는 옛날에는 우리 계림(鷄林:신라의 다른 이름)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일본인들이 차지했는지 알 수 없다’에 나타나듯이

신라의 영토였던 것이 분명하다.

즉 제주도가 탐라(耽羅)국으로 백제에 조공(각종 귀한 물건을 바치는 것)을 바치는 속국으로 있었듯이,

대마도도 신라 이래로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살아가는 속국(屬國)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나라에 간절히 바랬다.

 “저희들은 조선국 대마주의 백성이오니, 제발 조선의 백성으로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거절했다.

 “너희에게는 세금을 거둬들일 건덕지가 없는 땅이다. 단지 우리가 너희가 먹을 수 잇는 양식은 주마.”

그러나 ‘수직 왜인(受職倭人)’이라 하여 조선 정부로부터 관리로 임명받은 일본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정치적 지위를 인정받고 경제적 도움을 받았으며 왜구의 움직임을 보고하거나

조선과 대마도와의 외교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등 우리나라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부하 장수(구키요 시타카 등 24명)들에게 명령하여 팔도 총도를 작성했는데 대마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대마도가 우리나라에 속한 지방이요,

우리나라 땅이라는 사실은 대마도의 도주(島主)가 소(宋)씨인데,

이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무네’라고 하나,

우리 식으로 음을 딴 ‘소’라고 발음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또한 대마도주의 무덤이 울산에 18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854년 일본이 미국에 의해 강제로 나라의 문을 열고 난 뒤에

나라의 힘이 우리보다 강해진 틈을 타서 오늘날에는 일본 영토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일본의 억지 주장에 맞서서 우리나라도 대마도를 대한민국 영토라고 해야만 한다.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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