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여성독립운동가 17

여성독립운동가 수원 기생 김향화

1897년 7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향화,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경기도 수원에 살던 정도성과 결혼을 했으나, 정도성에게는 김향화보다 6세나 많은 딸이 있었다. 결국 18세 되던 1914년에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왔으나, 같은 해 5월에 부친의 사망으로 집안은 더욱 기울어졌다. 이에 김향화는 가족 부양을 위해 기생이 되었다. 그녀는 1918년 이라는 홍보책자에 32명의 기생 중 1인으로 소개되었다. 갸름한 얼굴에 주근깨가 그녀의 멋을 더하였다. 순한 성품에 귀염성이 있었다. 탁음이 섞인 애원성이 있는 목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특기가 있었다.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장례식에 서울에서 울려퍼진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김향화, 수원에서도 3월 16일부터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김향화를 비롯한 수..

여성독립운동가 두진훼이 선생

두진훼이 선생은 독립운동가 김성숙(창숙) 선생의 부인이다. 김창숙 선생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는 길에 용문사에서 17세의 나이에 출가하였다. 그 뒤 봉선사로 옮겨 한용운, 손병희와 사귀며, 1919년 3월 봉선사에서 시위운동을 펼쳤다. 두진훼이 선생은 중국 현대사에서 지식인이요 혁명가로, 그리고 중국 여성을 근대화시키고자 한 인물이다. 중국 광저우(廣州) 중산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중국 수상을 역임한 주은래의 소개로 1929년에 독립운동을 하던 김창숙 선생과 혼인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우호를 위해 항일독립운동에 나섰다. 1943년 2월부터 1945년 9월까지 중국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요원으로, 1945년 5월 한국구제총회 이사로 활약했다. 독립운동 ..

여성독립운동가 광복군 여성 1호 신정숙

최초의 여성 광복군이며 김구 선생의 개인 비서였던 신정숙 선생. 1910년 평북 의주에서 출생한 신정숙은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가 가명을 사용하였기에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신정숙선생은 아버지와 역시 독립운동가였던 언니 신봉조(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생사가 불명해짐)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남편 장현근과 결혼하였지만, 혼인 생활은 길지 않았다. 장현근 선생 또한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상해로 망명하여 애국청년단 활동을 하다 1932년 안창호 선생과 함게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장현근 선생은 가석방되어 다시 중국으로 망명의 길을 나섰다. 신정숙 선생도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중국유격대에 잡혀 포로가 되었다. 김구 선생의 도움으로 충칭에 온 신정숙 선생은 백범 선생의 비서가..

여성독립운동가

민영주, 안수산, 강주룡, 블리디보스토크의 자매 민영주는 1923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1940년 9월에 한국광복군 창설시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1942년 1월 내무부 부원으로 충칭방송국에서 심리작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김구주석을 도왔으며, 1945년 4월 광복군 2지대에 편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민영주선생님 민영주선생님이 사용하던 서예도구 안수산은 1915년에 안창호선생과 독립운동가 이혜련의 딸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미군 해군 최초의 여성 포격술로 근무하였다. 강주룡은 1901년 함경도 강계에서 출생하여 1931년 평양적색노동조합에 참여했다. 평양 2300명의 고무 직공들의 임금 삭감과 민족 차별에 항의하여 평원고무공장의 파업을 주도하였다. 당시 을밀대..

여성독립운동가 안중근의사의 모친 조마리아님

안중근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는 1862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안태훈과 결혼 후 3남 1녀를 모두 독립운동가로 길러냈다. 조마리아는 1907년 안중근이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자, 삼화항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여 패물을 아낌없이 내놓아 아들을 후원하였다. 이또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사가 사형을 언도받자 조마리아는 깨끗한 죽음을 택하라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수의를 보냈다. 안중근의사의 사형 후 연해주로 이주했던 조마리아는 1920년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 이강, 김붕준 등과 이웃해 살면서 상해 독립운동 진영의 안주인이자 어머니 역할을 해 ‘여중군자’로 불렸다. 1920년대 연해주 대동공보 주필 이강 선생은 조마리아를 가리켜 ‘과연 범이 범을 낳았다’고 말할 만큼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1926년 안창호가..

여성독립운동가 곽낙원선생님

세종문화회관 지하 세종미술관에서 여성독립운동가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 중 백범 김수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님은 우리에게 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곽낙원은 185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4세에 김순영과 결혼하여 아들 김구 선생을 두었다 . 곽낙원은 가난한 집안 형편 속에서도 외아들인 김구 선생에게 교육에 헌신적으로 힘써 강한 신념과 저항정신을 가르쳤다. 17세에 남편 김순영이 반신불수가 되자 곽낙원은 남편의 병을 고치고자 전국을 돌며 의사를 찾아다녔다. 김구 선생이 치하포 주막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찔러 죽인 후,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 왜놈을 죽였노라’ 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해주백운방기동 김창수’라는 서명을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구 선생은 일본군 살해 혐..

지청천장군과 딸 여성독립운동가 지복영여사

이제 내일이면 광복 70주년이다.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 대한민국으로 발전하는데 있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 한국 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장군은 호가 백산(白山)이고, 본명 대형(大亨)이며 일명 이청천(李靑天)이라고도 한다. 1888년 1월 25일 서울 삼청동에 있던 옛집에서 지재선과 경주이씨의 장남으로 출생한 장군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3세 되던 해에 활쏘기대회를 구경하고 난 후 활쏘기를 취미로 하여 능숙한 활솜씨를 자랑하니 지씨 가문에 또 장군이 났다고 하였다. 이는 장군의 조상 중에 고려시대 충의군 지용기(池勇奇)명장, 조선시대 충장공 지여해(池汝海)장군, 충성군 지계최(池繼崔)장군 등 훌륭한 장군을 많이 배출했기 대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