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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총독들

한국민을 탄압하고 식량과 자원을 수탈해간 일제의 식민지 당시의 총독들은? 초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852~ 1919). 육군원수 신분으로 1910~16년까지 초대 총독이었으며 16~18년 총리도 맡았다. 그는 집에서 숨졌지만, 대를 이어 육군원수가 됐던 아들 히사이치(壽一:1879~1946)는 태평양전쟁 당시 남방사령관을 맡았다가 항복 뒤 말레이시아 포로수용소에서 객사했다.2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曲川好道:1850~1924)1916년에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총독에 부임했다. 데라우치의 무단통치를 하다 조선 백성들이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외치자 자리에서 밀려났다.3대와 6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1858~1936) 두 차례 총독을 맡았던  첫 예비역이자 유일한 해군 출신이다. 다섯 차례 해..

8월 13일 오늘의 역사, 철의 장막이 설치되는 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베를린은 동,서 베를린으로 갈라졌다. 베를린을 동서로 나누며, 서베를린은 동독 공산주의 국거 안의 유일한 자본주의 지역이기에 ‘육지의 섬’으로 불리웠다. 그럼에도 베를린에서는 비록 땅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었지만, 베를린 내에서의 주민들의 왕래는 자유로웠다. 사회주의 정권인 동독의 관할 하에 있던 동베를린에서 통제와 억압을 계속되자, 이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서베를린으로 탈출했다.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전문직 종사자나 숙련 노동자들로 1년에 20만 명 정도에 달했다. 이에 동독은 1961년 8월13일 에리히 호네커의 감독 아래 동,서 베를린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와 거리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극단적인 대책을 실시했다. 철조망으로도 부족한지 곳곳에 탱크가 배치..

8월 12일 오늘의 역사, 제4대 대통령 선거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에서 자행된 부정 선거로 같은 해 4월 19일,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이승만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1960년 6월 15일 3차 개헌으로 정치 체제가 내각책임제로 바뀌며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이에 따라 제4대 대통령 선거는 간선제로 참의원 및 민의원으로 구성된 국회 양원합동회의에서 국회의원 2/3 이상의 투표를 얻어 당선되었다.1960년 8월 12일, 재적 국회의원 263명 중 259명이 출석한 가운데 투표가 진행되어 당시 민주당 소속 윤보선 후보가 208표를 얻으며 제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윤보선 대통령은 신파인 장면을 국무총리로 지명하였고 이로써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제2공화국은 1..